세계 최대 경제권에 본격 진출 포석|전 대통령 유럽 순방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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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 대통령의 유럽 4개국 및 EC본부 순방 일정이 25일 구체적으로 발표됐다.
전 대통령은 영·독·불·벨기에 등 순방 4개국의 정상들과 단독 정상 회담을 갖고 유럽 국가들과의 실질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와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기반을 확충하는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전 대통령은 정상 회담 및 순방국 지도자들과의 오찬·만찬 등의 접촉을 통해 △한반도 및 국제 정세 △쌍무간 경제·통상·과학·기술 협력 확대 △세계 주요 경제 현안과 선진국보호주의 확산 방지 △88서울 올림픽의 지원 및 문화 교류 증진 △국제 무대에서의 협력 강화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 대통령은 특히 순방국 정상들에게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 및 평화 통일에 관한 우리의 구상을 설명하고, 소련과 북한간의 군사적 결속 상황 등 최근의 한반도 안보 정세에 관한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을 가짐으로써 한반도 상황에 대한 서구 각국의 이해와 인식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태평양-대서양 국가간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안보·외교 분야에서 뿐 아니라 이번 순방은 세계 최대의 경제권인 EC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가 있다.
이번 순방의 수행 각료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상공장관·과기처장관 등 경제 팀 중심으로 짜여 있고 대통령의 경제 수석 비서관과 경제 4단체장을 포함한 34명의 민간 경제협력 사절단이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경협 확대에 대한 열의와 비중을 알 수 있다.
부총리가 순방국의 주요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경제 현황에 관한 설명회를 갖고, 영·독·불에서는 수행장관들이 상대측과 개별 각료 회담을 가지며, 벨기에와 EC에서는 합동 각료 회담을 갖는다.
특히 이번 순방에서 △유럽의 대한 투자 및 첨단 기술 이전 확대 △중소기업간의 협력 확대 △우리 상품에 대한 유럽의 수입 규제 완화와 일반 특혜 관세 (GSP) 공여의 지속 문제 등도 중점 논의될 예정이다.
미국·일본 등이 부머랭 효과 등을 내세워 우리 나라에 기술 이전을 기피하고 있는데 비해 유럽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미·일에의 기술 의존도를 개선하는 기회로 삼을 것 같다.
이들 국가들 역시 우리 나라를 개도국 성장의 모델이자 성장 잠재력이 큰 미래의 교역 파트너로 평가하고, 중공·일본을 포함한 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위한 전초 기지로 우리 나라를 활용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교역량 확대와 자본·기술 협력 확대 방안이 중점 논의 될 것으로 양국 기술 협력에 관한 양해 각서에 서명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원전 11·12호기 건설, 경부고속 전철, 올림픽 기자재 구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독에서는 특히 원자력 협력 협정 및 양국 과학 기술 협정 서명식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벨기에와 EC 본부 방문에서는 한국의 대 EC 협력 증진 방안이 중점 논의될 전망이다.
이 같은 경제 측면에서의 실질 협력 관계 못지 않게 이번 순방에서는 남북한 직접 대화를 통한 우리의 평화 정착 및 평화 통일 구상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지역에 대해 활발한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한의 기도에 쐐기를 박고 한반도상황에 대한 이들 국가의 이해와 인식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5월 동경에서 열리는 서방 7개국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전 협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 회담 결과의 공표는 공동 성명 형식을 취하지 않고 「보도 자료」로 발표키로 합의가 됐는데 이는 서유럽 국가들이 정상 회담을 실무화, 그 결과를 공동 성명으로 발표하지 않으며 필요시 보도 자료, 또는 기자 회견을 통하여 발표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정상간의 빈번한 교류에 따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공동 성명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공산 국가들과의 회담의 경우 오해 발생 소지를 없애기 위해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다.
결론적으로 세계 외교의 핵심 무대라 할 수 있는 영·독·불을 거의 같은 시기에 방문하여 정상 회담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외교의 도약을 의미하는 동시에 우리 국력의 신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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