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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문제와 허리 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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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어떤 만화가는 교수의 신세를 샌드위치로 묘사했다. 양쪽으로부터의 압력에 짓눌려 고민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교수라는 것이다. 양쪽이란 집권 세력과 대학생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오늘의 한국 대학 교수는 어느 쪽도 처다 보지 않은 채 멍청하게 눈망울만 꿈틀거리지 않는 한, 「어용 교수」와 「문제 교수」의 딜레머에서 헤어나기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다.
당국에서 지시하는 대로 소위 「지도」라는 것을 한답시고 어물거리다보면, 어느 틈엔가「어용 교수」로 불리게 되며, 선생의 도리를 한답시고 제자들의 처지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틈엔가 「문제 교수」로 낙인이 찍혀버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눈망울만 꿈틀거리며 그냥 있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양쪽으로부터 「소신 없는 자」혹은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일찌기 이렇게 묘사한바 있다. 인간은 깊은 심연 위에 매달린 외줄을 타고 서 있다. 앞으로 가려해도 발이 떨러 한 발짝 내디딜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뒤로 돌아가려 해도 마찬가지로 무섭고 떨린다.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계속 외줄 위에 서 있기도 고통스럽다.
만일 「니체」가 오늘의 한국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다면, 그가 묘사한 인간의 모습은 바로 교수인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한국 땅에서 교수 노릇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신통치 않은 여건 속에서 연구다운 연구를 해내기 쉽지 않으니 괴롭지 않을 수 없으며 거기다가 학생 수는 많은데 적은 인원으로 강의다운 강의를 해내기 쉽지 않으니 이 또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교수의 목을 걸고 수행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는 「학생 지도」라는 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또한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괴로움보다 견디기 정말 어려운 괴로움이 있으니 그것은 최루탄 가스에 시달리는 원시적인 괴로움이다.
학교에 가기가 무섭다. 교단에 서서 연방 기침을 해대며 눈물을 홀리면서 학생들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진다. 연구실이라고 크게 나을 것도 없다.
「대학 자율화」가 정부의 시책으로 세상에 널리 홍보되던 때만해도 요즈음처럼 최루탄 가스에 그렇게 극심하게 시달리지는 않았다. 그것만해도 대학을 매일의 일터로 삼고 있는 나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떤 경위로 소위 「대학 자율화」가 애당초 정부의 시책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으며, 또 무슨 까닭으로 그것이 요즈음엔 슬며시 뒷전으로 물러가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문교부의 책임자가 바뀔 적마다 소위 「학원 문제」에 대한 무슨 신통한 묘책이 있을 것 같은 기대 (?)가 모아지곤 한다. 갖가지 신묘한 처방들이 강구되어 백방으로 노력해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게 많은 명의들의 비방이 별 효험을 거두지 못했다면, 무엇인가 사태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고 한번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리 병」이라는 말이 있다. 허리 병이라는 말은 허리가 아픈 병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허리가 아픈 것은 범의 증후일 뿐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몸이 과로해도 허리가 아프며, 위나 간과 같은 장기에 큰 고장이 나도 허리가 아프다.
허리 병을 고치려면 고장난 곳을 찾아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허리만 가지고 주물러대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 이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다.
오늘 우리가 「학원 문제」라고 부르는 현상도 「허리 병」과 마찬가지 경우임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한다. 눈으로 보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학원임에 틀림없으나, 문제의 원인은 다른데 있다. 고장난 곳은 학원이 아니라 딴 곳이다. 딴 곳의 고장이 학원에 하나의 증후로 드러나 있을 뿐이다.
오늘 「학원 문제」를 앞에 놓고 마주서 있는 교수들의 고민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고장난 곳은 학원이 아니라 딴 곳이므로, 교수의 손으로는 그 고장을 고칠 수 없다는데 오늘의 사태 앞에 선 교수의 무력감과 고민이 있다. 만일 소위 「학원 문제」라는 것이 교수가 강의를 잘못 한다든가 연구를 신통치 않게 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학원 자체에 의해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학원 문제」의 진원은 학원 밖에 있다. 그것은 「정치의 불구화」에 있다. 만일 이런 진단이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학원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정상화」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우리는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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