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영업이익 6조 넘었는데, 가정은 전기료 누진 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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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은 국내 가계와 기업에 전기를 독점 공급한다. 전기를 싸게 들여와 비싸게 내다 팔면 한전의 경영 실적은 호전된다. 한전은 올 1~6월에 매출액 28조9608억원, 영업이익 6조309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0.6% 늘었고, 영업이익은 45.8% 급증했다. 한전의 영업이익률은 20.4%로 거래소 상장기업 평균이익률(5%)의 4배를 넘는다.

전기 도매가격 7년만에 최저수준
싸게 들여와 누진제 등 비싸게 팔아
야당 “누진 6구간 간소화하거나
미·일처럼 원가연동제 도입 필요”
정부 “에어컨 하루 4시간 틀면 돼”
시민들 “그걸로 폭염 견딜 수 있겠나”

한전이 전기를 사오는 가격인 전기 도매가격은 지난 6월에 65.31원/㎾h으로 2009년 7월(66.39원/㎾h)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저유가 등의 영향이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14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형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전력 판매량이 증가하고 저유가에 따른 비용 감소 효과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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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촌동 한 아파트에 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의 모습. 아파트 등 주택에서 사용한 전력은 산업용·일반용 전력과 달리 사용량에 따라 6단계의 누진제가 적용된다. 사용 전력량이 500㎾를 넘으면 최고 단계의 요금을 내야 한다. 최근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폭염에도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여기에다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다가 ‘누진제 폭탄’을 맞는 가정이 늘어나면 한전의 실적은 더 좋아진다. 최고 구간인 501㎾h 이상 전기를 쓰는 가정은 ㎾h당 709.5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최저 구간인 100㎾h 미만 전기를 사용하는 가정(60.7원)보다 11.7배의 전기요금을 더 낸다.

가정에서 월 300㎾h 이상 사용하면 본격적으로 누진제가 적용되는데 4인 도시가구의 월평균 사용량은 이보다 많은 327㎾h다. 게다가 주요 국가와 비교해 누진제 격차는 크다. 미국은 1.1배, 일본은 1.4배 수준이고 대만도 2.4배에 그친다. 저유가로 한전의 비용은 줄었는데 소비자들은 이에 따른 이득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만 커지는 구조다. 반면 기업이나 상가에 공급하는 전기는 아무리 많이 써도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이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일 전기요금 누진제를 현행 6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처럼 원가연동제를 전기요금에도 적용해 저유가에 따른 전기 원가 하락을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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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광주 상무역에서 직원들과 절전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국전력]

하지만 정부는 ▶서민층의 전기료 부담 가중 ▶부유층 전기료 감세 논란 ▶에너지절약과 같은 이유를 들어 누진제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이 최근 많은 흑자를 내지만 그 전에는 5년 연속 적자를 봤고, 부채만 107조원에 달해 전기요금 체계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원가연동제 도입도 유가 변동폭이 커지면 전기요금도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이날 기자 브리핑을 하고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60%로 국제적으로 과도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채 실장은 “스탠드형 에어컨 기준으로 3.5시간, 벽걸이형은 8시간 틀면 한 달에 9만~10만원을 더 내는 구조”라며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 등에선 “하루 4시간 에어컨 가동으로 폭염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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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체 전력 사용량의 13%만 차지하는 가정에만 징벌적 요금을 부과하는 요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전체 전력 사용량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6%, 일반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1%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도 에어컨을 사용하는데 주택용에만 누진세를 부과하는 요금 체계는 비정상”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한전이 전기 공급을 독점하는 시스템을 고쳐 이동통신처럼 복수의 공급 회사가 경쟁을 해서 다양한 요금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하남현·김민상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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