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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영화 만들다 지쳤다"|베를린 영화제 참석자들이 말하는 최-신 탈출동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달 14∼25일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했던 한국영화계 대표들은 신상옥·최은희커플이 먼저 김지미씨등 한국배우들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그들이 제작한 영화작품이 영화제에서 별 인기를 끌지 못한데 대한 좌절감에 빠져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두사람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의 빈에 김정일의 지원으로 신필름사를 차렸으나 특수촬영기등을 구입하느라 3백만∼4백만달러의 빚을 진데다 최은희씨의 건강이 매우 나빠져 진땀을 흘릴 정도로 수척해지는등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여건의 변화 때문에 탈출을 결심하게 된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영화계인사들이 당시 보고들은 신·최 커플의 탈출동기에 대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신·최 커플이 북한에서는 그동안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영화를 만들어 주가를 올렸으나 파리나 베를린등의 국제영화무대에서는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다. 신감독은 특히 이 문제에 대해 한국영화계 인사들에게까지 자신의 불만을 표시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있었다.
신감독은 또 오스트리아 등지에 촬영소를 차리고 최근에는 서독뮌헨등지에서 특수촬영용 장비를 구입하느라 3백만∼4백만달러(27억∼36억원) 의 빚을 안게돼 고민해왔다.
이들 커플은 이처럼 영화제작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데다 두사람 모두 나이가 60세가 넘게되자 자녀등 한국에 두고온 가족들을 그리워하게 됐고 그로 인해 심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겹쳐 최씨가 담석증수술을 받는등 건강이 악화돼 김지미씨와 만나면서도 계속 식은땀을 흘리는등 더이상 버텨나갈수 없는 상황에 이른것 같았다는 것이다.
한편 베를린영화제때 김지미씨가 신·최 커플과 주고받은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신감독님. 이제 구경도 많이 하셨을테니 들어오시지요.
신=(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머쓱한 표정으로) 빚이 3백만∼4백만달러나 되는데….
김=그정도는 제가 갚아드릴께요.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거든요. 저도 영화사 등록했어요. 귀국해서 같이 영화를 만들어요.
신=(놀라는 표정으로) 그렇게 많이 벌었어?
최=최경옥감독(최은희 동생) 은 잘있니? 황정순씨는?
김=잘들 계세요.
신=수미랑 아이들 소식좀 알려줘.
신=최경옥 감독은 활발하지 못한 것 같은데 혹시 우리 때문에….
김=그렇지 않아요. 경쟁사회에서는 능력과 운이 문제지. (이때 최은희는 앞이마와 뒷머리쪽에서 식은땀을 흘려 손수건으로 계속 닦았다. 당시 실외기온은 영하14도. 실내기온도 영하처럼 추웠다.)
김=(최은희의 땀을 닦아주며) 많이 늙은것 갈아요, 언니.
최=(쓴웃음)
신=(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차가 대기중인데… 영화인끼리라도 자주 만나자. 연락 자주할께.
김=그럼요.
신=할 얘기가 많다. 내 영화에 출연해주겠지?
김=빚도 많다면서…. 저는 개런티를 많이 받아야 출연해요. 자신 있어요?
신=우리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김=(웃으면서) 머뭇거리다가는 찍혀요.
이들이 만난 곳은 베를린의 시티캐슬호텔 307호실이었다.
신·최등 북한대표단 16명은 당시 베를린영화제에『심청전』『불가사리』 등 신감독작품 2편, 만화영화 2편을 갖고 참가, 「코리아 필름」이라는 제목의 홍보인쇄책자를 배포했다.
종이는 모두 아트지로 동구에서 찍은 것으로 보였으며 내용은 모두 영어. 신필름프러덕션이라는 이름이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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