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절박했으면…일왕, 5년 만에 대국민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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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明仁ㆍ83) 일왕이 TV방송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한 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5년 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8일 NHK 등 주요 방송사를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서 조기 퇴위 희망 의향을 밝혔다. 이 영상은 전날 일왕 거처인 도쿄 황거(皇居)에서 전속 카메라맨이 촬영했다.

사전 녹화 영상이긴 하지만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아키히토 일왕은 그 동안 외교적 입장 표명ㆍ왕실 행사ㆍ연례 국회 연설 빼고는 공개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며 “그가 카메라 앞에 선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현행 일본 헌법이 일왕의 정치 관여를 일절 금지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NYT는 “아키히토 일왕이 방송 연설을 꺼리는 데는 부친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945년 히로히토 일왕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를 공표한 바 있다. 일왕의 대국민 담화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앞에 거의 나서는 일이 없던 아키히토 일왕이 이번처럼 TV방송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한 건 국가적인 재난이 있었을 때였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다. 아키히토 일왕은 대지진 닷새 뒤인 16일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사상 초유의 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이 걱정된다”며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NYT는 “아키히토 일왕 재임기간 사상 첫 TV방송 대국민 담화였다”며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궁내청도 아키히토 일왕이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도 하지 않았던 대국민 연설을 후쿠시마 대지진 때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아키히토 일왕이 5년 만에 ‘생전 퇴위’의향을 TV방송을 통해 밝힌 것은 그만큼 다급하고도 절박한 마음이 담긴 것이라는 분석이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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