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보다 젊은 후보 내세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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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30면

122석. 새누리당의 지난 4·13 총선 성적표다. 충격적 참패였다. 2004년은 탄핵 역풍으로 인해 ‘모두가 예상한’ 패배였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번 패배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의 마지막 보루인 난공불락의 아성 강남벨트와 대구가 뚫렸고, 전통적 텃밭인 부산은 더 이상 ‘내 땅’이라고 우기기도 힘들 정도로 무너졌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받아들이고, 새누리당은 사실상 ‘정권이 넘어갔다’고 받아들여야 했지만 청와대와 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반에 3석 모자라는 148석 정도는 얻은 것처럼 행동했다. 선거 후의 모든 과정을 보면 딱 ‘148석’에 맞는 결정의 연속이었다. 총선에서 122석의 원내 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이 이래도 되는 걸까?


새누리당이 ‘처외삼촌 묘 벌초하듯이’ 전당대회를 치르는 이 시간에도 2017년 대선 열차는 ‘정권교체’의 레일을 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보다는 정권교체 여론이 훨씬 높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중에서 누구에게 호감을 갖느냐는 질문에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의 합보다 높게 나온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직무 평가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훨씬 높다.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호감에서도 야당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일관되게 높게 나온다. 과거·현재·미래 대통령 평가에서 모두 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성공시대’를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 모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2007년과 2012년에는 정치적 반대자들도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말을 믿었으나 지금은 지지자들도 믿지 못한다. 한 때는 ‘혁신의 DNA’, ‘승리의 DNA’가 새누리당의 상징일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 꼴이 되고 말았다. 혁신도 없고, 미래도 없고, 새로움도 없고, 통합도 없다. 대신 기득권·과거·낡음·분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에게 답을 듣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정권을 잃을수 있다는) 위기에 동의하는가? 문제를 알고 있는가? 해결책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듣지 못했다. 솔직히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을 계속 경영할 비전도 없고, 전략도 없고, 리더십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다음 대통령은 야당에서 나올 것이다. 현재로선, 맨 앞자리에 문재인이 있다. 그러니까 보수진영에 던져진 실존적 질문은 “문재인 대통령 견딜만하겠습니까”다. 1997년 정권교체를 몸으로 경험했던 보수진영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공포와 전율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질문은 “누가 나가야 문재인을 이길 수 있는가”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네 가지 기준에 맞는 후보를 내세우라고 권할 것이다.


첫째,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의 이미지가 있는 후보여야 한다.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한 쟁쟁한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을 택했다가 스스로 무너졌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중에 박원순을 찍은 유권자는 꽤 있었지만 ‘문재인을 찍은’ 사람들 중에 정몽준을 찍은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그것이 승부를 갈랐다. 결국 선거는 ‘외연확장’이 가능한 후보를 내세워야 외연이 확장되는 것이다. ‘보수의 대통령’이나 ‘계파의 대통령’에 갇혀 있는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둘째, ‘대한민국 리빌딩(Rebuilding)’에 걸맞은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는 후보여야 한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복지·정치 혁신·국민 통합과 같은 ‘수세적’ 이슈에서 김종인·안대희·한광옥 등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선제적 방어 전략으로 승리했다. 이번에는 안 통할 것이다. 개혁이나 혁신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라를 뜯어고치는 ‘혁명적 공약’를 들고 나가지 않으면 1987년 30주년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이기기 힘을 것이다.


셋째, ‘문재인보다 젊은’ 후보여야 한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2017년 새누리당도 ‘도전자’의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집권당의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야당의 이미지로 싸워야 한다. 2002년 노무현이 그렇게 싸웠다. 이회창은 마치 여당 후보처럼 싸웠다. 상대 후보보다 더 젊은 후보는 도전자 이미지를 구축하기가 쉽다. 문재인을 ‘늙은’ 후보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승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넷째, ‘원칙있는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자신이 믿는 신념과 가치를 위해 져도 좋다는 후보만이 ‘자기다운’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후보가 가장 무섭고 강한 후보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원칙없는 패배’를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체성이 다른 김종인을 끌어들여) ‘원칙없는 승리’를 했다. 정의당은 ‘원칙있는 패배’를 했다. 위험한 도박에 나섰던 안철수는 절박했기 때문에 ‘3당 혁명’의 기치를 걸고 ‘원칙있는 승리’를 쟁취했다. 2002년 노무현이 이인제·정몽준·이회창을 차례로 꺾은 힘도 ‘원칙있는 패배’를 각오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박성민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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