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과 공존, 자투리 공간 활용하면 가능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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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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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뉴 셸터(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전시장 한쪽엔 목재 기둥을 얼기설기 세워 만든 집 한 채(사진)가 서 있다.

‘동물 건축가’ 최춘웅 서울대 교수
“사람과 동물의 동선은 서로 달라
매년 버려지는 8만 마리 쉼터 필요”
버클리·하버드대서 인테리어 공부
농원 조성사업 하면서 영감 얻어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 모퉁이에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지붕 없는 집이 눈에 띈다. 또 맞은편 담장 위에는 장난감같은 소형주택이 올라섰다. 서울대 건축과 최춘웅(46) 교수가 작업한 ‘마당 한 켠 내주기 프로젝트’ 모형이다. 대문 옆 울타리집의 주인은 강아지고, 담장 위 작은 집은 고양이를 위한 공간이다. 길강아지·길고양이 같은 이른바 ‘동물 난민’을 위한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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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웅 교수가 5년 전 설계한 상하농원 동물농장 모형을 들고 있다. 그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유기체가 함께 사는 건축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충무로 진양상가내 건축사무소에서 만난 최 교수는 “자신의 터를 빼앗긴 채 살기 위해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난민과 유기동물은 비슷하다”고 했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얘기하지만 그 그늘에는 매해 버려지는 8만 여 마리의 유기동물이 있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협업한 이번 작업에서 서울 망원동의 단독주택을 모델로 해 동물 난민에게 집의 자투리 공간을 내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사람과 유기동물의 동선은 달라요. 큰 불편 없이도 동물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거죠. 대문 아래에는 강아지 임시대피소를, 고양이가 지나 다니는 건물과 담장 사이엔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하면, 공간 낭비도 줄이면서 유기동물과 사람이 한 집에서 공존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15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클리대·하버드대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전시공간 디자인 등을 주로 했던 그가 동물관련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5년 전 동물축사인 상하농원 조성사업을 진행하면서부터다. “닭과 돼지를 수용하는 건물을 처음 설계하면서 어떤 재료로 어떻게 지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동물을 위한 건축도 드나드는 동선을 제외하면 인간을 위한 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뒤 ‘인간도 수많은 동물 중 하나’라는 ‘포스트 애니멀 이론(post animal studies)’을 건축에 적용해 “인간이 편히 살기 위한 건물이 아니라 모든 유기체가 함께 사는 건축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3년 전에는 서울대에서 관련 수업을 첫 개설했다. 이 강의에서는 장애인·비장애인의 동선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 유아, 노인 등 주택 사용자 각각의 특성에 따른 동선을 예측해 설계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주민 노동자의 주거현황에 대한 점검과 제안, 예비군 훈련장을 탈북민의 임시 거처로 활용하는 방안 등도 소개됐다. ‘정치적, 환경적 이유로 터전을 잃은 사람’이라는 난민의 정의를 ‘낯선 곳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이들’로 까지 확장한 것이다. 전시회는 7일까지다.

글=김유빈 기자 kim.yoovi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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