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르코스 침실은"병원" 침대 옆엔 산소탱크도|모습 드러낸 말라카냥궁 내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수천명의 필리핀 국민들이「마르코스」가 떠난 말라카냥궁으로 몰려들자 20년 동안 수백m밖까지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말라카냥궁은 일시에 시민공원으로 변했다.
궁내의 넓은 잔디밭은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궁 안팎은 마치 동네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거니는 노인들, 깔깔대며 뛰노는 어린 학생들, 우리의 팥빙수와 비슷한 할로할로와 냉차를 파는 행상의 호객행위, 모두가 잔칫집 풍경이었다.
이처럼 평화로운 바깥 풍경과는 달리 말라카냥궁 내부의 모습은 다소 살벌했다. 「마르코스」집무실 서가의 책갈피 속에 부비트랩이 장치돼 있는 것이 발견돼 누군가「마르코스」 암살을 기도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마르코스」부부가 미처 갖고 가지 못한 온갖 귀금속·골동품·그림 등은 보는 이의 넋을 뺏기에 충분했다.
2층에 있는「마르코스」의 침실은 미니병원이었다. 침대 옆에는 산소탱크가 놓여 있었다. 침대 곁에는 소니TV·냉장고·체력 단련기 등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용도를 알수 없는 빨간색 버튼이 여러개 보였으며 침실 옆 한쪽벽장은 약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멜다」의 침실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디스크 라이브러리가 있었다. 노래와 춤을 즐겼던「이멜다」는 평소 이곳에서 즐겨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대형거울이 있는 그녀의 의상실에는 아직 수백벌의 값비싼 비단옷들이 걸려 있었으며 세계 각지로부터 수집된 비누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수십벌의 프랑스제 최고급 향수병에서 내뿜어지는 향기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이멜다」는 수집한 보석을 빼놓고 가진 않았던 것 같다. 침실 바닥에는 보석함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이멜다」의 욕실 천장은 거울로 돼 있었으며 대형욕조 옆에는 최고급 향수병들이 즐비했다.
「마르코스」일가가 황급히 말라카냥궁을 떠난 뒤 군중들이 말라카냥궁을 습격, 약탈했으나 미처 2층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침실 벽에 명화와 골동품들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걸려 있었다.
모든 방에는 아프가니스탄·이란·인도 등지에서 들여온 호화 카피트 벽걸이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닐라=박병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