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대화고지」선 점에 부심|여-야의「서명정국」대응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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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정당은 야권의 기습서명사태와 관련해 12, 13일 연달아 고위당정협의를 벌였으나 당분간은 정부 쪽의 초기봉쇄·저지목적의 사법적 조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확인.
비록 모양이 사납더라도 사법대응으로 초반쐐기를 박아야 더 이상의 야당서명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데 정부. 여당의 시각이 일치한 것이다. 민정당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정부와 야권이 어떤 형태로든「일합」을 치르고 난 후라야 한다는 데도 정부. 여당이 의견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명에 대해 강경 조치로 다루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일반국민에게는 서명에 당국조사가 따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효과도 거두자는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주도의 이 같은 강경 일변도의 사태처리에 민정당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저 뒤따르는 형국.
13일 당직자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간부는 회의내용을 전하면서『「정부와 야당」의 충돌을 걱정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이번 사태를 아직은 정부 대 야당간의 문제로 보고 있다.
또 이 회의에서는 법무부. 문교부 등 이 민정 당과 사전 협의 없이 각종 방침을 발표하고 처리하는데 대한 불만의 소리도 나왔다는 얘기다. 때문에 12일의 관계 장관회의와 13일의 당정회의에 참석했던 노태우 대표위원과 정순덕 사무총장은 두 회의의 결정사항들을 당직자들에게 신경 써서 설명하는 한편 시위관련학생은 전원 제적한다는 보도는 오해라는 손제석 문교장관의 해명도 노 대표와 정 총장이 대신 설명.
이처럼 2선으로 물러나 정책개발. 대 국민홍보 등 이나 담당하는 민정 당이지만 곁으로는『학생의 기소. 신민 당 수색 등은 검찰의 고유권한』『이번 일은 입법사항이 아니고 법의 적용·집행이므로 당이 개입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민정 당으로서는 궁극적으로 돌아올 정치적 부담에 고심하고 있다. 결국 뒷수습은 민정 당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정 당은 어차피 일전을 치른 후에야 대화가 성립될 것으로 보고 우선 일은 정부에 맡긴 채 자신은 대 국민 설득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서는 상황이 어떤 모양으로 비화될지 예측할 수 없으나 정부·여당이나 야권 어느 쪽도 완승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협상국면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도록 정지작업을 해 둔다는 것이다.
민정 당은 이런 대치가 장기화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은 불안정한 정국의 지속은 정부. 여당의 권위만 손상시킬 뿐 아니라 새 학기의 시작 등 곤란한 변수만 더하게 되므로 오래 끌지 않는 게 낫다는 풀이도 있다.
한 당직자는『이 마당에서는 야당도, 여권도 대안이 없다. 야당은 최선을 다해 얼마나 투쟁의지를 보이느냐, 여권은 스타일을 구기지 않으면서 얼마나 멋지게 사태를 처리하느냐는 것만 남았다.
한마디로 지금은「겨울」이다. 추운 날씨에 「들러리」는 걸맞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대화는「겨울」이 끝나야 한다는 뜻인데 U일 임시국회와 총무 회담 등에 다소 신축성을 보인 것으로 보아 곧「겨울」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낳고 있다.
서명운동을 기습 단행한 신민당은 당사와 민추협사무실의 수색과 출입통제, 김대중씨의 가택연금, 김영삼 고문의 강제귀가조치 등 경찰의 잇단 실력행사에 밀리면서도 반사이익(?) 비슷한 것을 얻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지난 정기국회의「날치기처리」, 의원기소, 부의장 파동, 징계, 신보수회의 집단 탈당 등 내우외환에 의기소침했던 신민당은 학생과 종교계, 재야의「선수」와 정부의 잇단 강경 대응 및 그 엄포에 떠밀리듯 어쩔 수 없이(?)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명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신민당은 즉각적인「공권력의 대응」을 얻게 되었고 몇 차례의 충돌과정을 통해 손쉽게「개헌」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고 자 평하고 있다.
더구나 일련의 해프닝은 당의 체면회복. 사기회복과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13일 낮 외교구락부에서 있었던 가처분 신청원외 위원장들에 대한 총재 단의 설득도 어느 때보다 효과를 보는 등 서명운동이 공권력의 관심밖에 버려졌더라면 얻지 못 할「득」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김영삼씨는 13일 이런 당내 분위기를 반영하듯『어제 오늘 사태로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서명이 다 끝났다』면서『1천만 서명운동은 사실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김대중씨 측도 가택연금으로 새삼 외신의 관심을 받게 되는 등 이번 사태로 정치적 이익이 없지 않다는 역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강경 대처로 얻은 망 외의 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민당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을 꼽는다면 여당의 정쟁유보 등「엄청난 제의」를 받아 놓고도 의원기소 등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논의하고 따질 임시국회소집요구를 꺼낼 수 없었던 분위기를 벗어나 떳떳하게「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는 점이다.
신민당은 임시국회가 쉽게 열릴 수 있을 것이라 보지는 않으며 열려도, 안 열려도 손해볼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삼씨 역시 이번 일로 자신의 입당에 따른 부담감을 떨치고 야권의 무게 중심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맞은 것으로 보여진다.
앞으로 신민당은 자기 집(당사) 에 들어가는 것조차 뉴스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내외의 여건상 뉴스의 초점이 됐다.
정부의 강 공·무리수를 따져 가며 대여공세를 손쉽게 퍼부을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당분간 그 고삐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다.
이제 신민당의 남은 일은 이 사태를 어떻게 끌어가면서 어떤 시점을 잡아 정부·여당을 진정한 대화의 광장으로 끌어내느냐는 점이다. <김현일·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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