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 ‘틴에이저 테러’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기사 이미지

19세 아델 케르미슈(알제리계 프랑스인)

딱 그인 줄 알았다.”

중동계 청소년 9일간 3건 범행
프랑스 성당 테러범 알제리계 19세
시리아 가려다 붙잡혀 전자발찌
작동 중단되는 틈 타 테러 저질러
IS, 차별받는 무슬림 청년 겨냥
SNS 통해 ‘외로운 늑대’부추겨

26일 프랑스 루앙 인근 생테티엔 성당 테러 직후 이 마을의 18세 소년이 한 얘기다. 그는 이날 86세의 자크 아멜 신부를 살해한 알제리계 19세 아델 케르미슈와 중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케르미슈는 우리랑 똑같은 아이였다. 갑자기 지난해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되겠다고 하더라. ‘스위스로 갔다가 안 됐고 터키에선 붙잡혀서 돌려보내더라’고 말했다. 그러곤 감옥에 갔다. 친구들이 설득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오히려 ‘프랑스는 악한들의 나라다. 여기서 살아선 안 된다’며 우리를 설득하려 했다.”

이슬람국가(IS) 추종자가 된 케르미슈는 어렸을 때 평범한 소년이었다. 교육자의 아들로 어렵지 않은 집안 출신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여학생들 꽁무니를 쫓아다니곤 했다. 미국인처럼 차려입곤 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시리아로 가려 했고, 국가안보·테러 관련 요주의 인물 등급인 S등급으로 전자발찌까지 차게 됐다. 그러곤 오전 8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전자발찌의 작동이 중단되고 외출이 허용되는 틈을 타 성당 테러를 저질렀다. 프랑스 언론들은 “지난해 1월 시사만평 잡지인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인터넷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접촉하면서 짧은 기간에 급격히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기사 이미지

17세 리아즈 칸 아마드자이(아프간 난민)

최근 유럽을 연타한 공격도 또 다른 ‘케르미슈’의 소행이다. 다들 평범해 보이던 10대(teenager·틴에이저)였는데 돌변한 것이 공통점이다. 지난 18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통근열차에서 도끼를 휘둘러 5명을 다치게 한 테러범은 아프가니스탄 출신 17세 난민 소년이다. 지난해 여름 부모 없이 홀로 이주해 독일 사회에 정착할 꿈을 꾸더니 불과 몇 달 만에 극단주의에 빠져들었다. 고향에서 친구들이 살해됐다는 게 이유였다.

IS 매체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소년은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곤 “(나의 독일에서 테러로) 프랑스의 공포 따위는 잊게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기사 이미지

18세 알리 존볼리(이란계 독일인)

지난 22일 독일 뮌헨 쇼핑몰에서 총기 난사를 벌인 테러범도 18세의 이란계 독일 소년이었다. 7년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그는 5년 전 77명을 살해한 노르웨이 신나치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들과 같은 중동계 무슬림 10대들이 극단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서구 사회에서 겪게 되는 소외·분노가 기본 토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서구 주류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각종 차별에 분노해 왔다. IS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어린이들이 군사훈련을 받거나 심지어 참수하는 장면을 유포했다. 여섯 살 아이가 “불신자들을 살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IS는 청소년들을 ‘칼리파의 새끼 사자’들이라고 치켜세우곤 했다. 초기엔 이들을 시리아·이라크로 유인하려 했으나 길이 막힌 2014년 말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기지와 집을 공격하라. 참수하라. 적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추적해 그들의 삶을 공포와 지옥으로 만들라”고 요구했다. 현지 테러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IS는 최근 “누구라도 공격하면 IS 전사”라며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부추기고 있다.

잇따른 테러로 유럽연합(EU)의 기관차랄 수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일주일 사이 네 차례 중동계에 의한 공격을 받은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난민 포용 정책이 역풍을 맞고 있어서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민당(CDU)과 자매 정당 소속인 호르스트 제호퍼 바이에른주지사는 “독일인들이 테러에 화났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더한 곤경에 처했다. S등급으로 관리되던 10대가 어떻게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느냐는 점에서다. 오트노르망디 무슬림협의회 회장인 무함마드 카라빌라는 “경찰은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큰 테러만 네 차례란 점에서 프랑스 내에선 “테러를 막을 수 없다”(78%)는 비관론이 팽배하고 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