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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이 '남자들의 리그' 유리천장 깨는 동영상 보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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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밤 필라델피아의 민주당 전당대회장 정면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역대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흘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유리가 깨지듯이 영상이 깨지는 장면이 연출되며 힐러리 클린턴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대선 후보로 등극한 클린턴이 “오늘이 당신의 승리”라며 영상 메시지를 대회장에 전하는 순간이었다. 대회장에선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외조에 나섰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71년 봄에 한 소녀를 만났다. 화장기 없고 큰 안경을 쓴 그녀에게 자석처럼 끌렸다”며 찬조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아내는 나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목이 집중된 공개 연설인데도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 르윈스키 스캔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 여러분은 진짜를 뽑았다”라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진실과 다른 가짜 후보이고 클린턴이 제대로 된 후보라는 취지의 비교에 박수가 이어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또 “변화를 만드는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클린턴 만들기’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전날에 이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었다. 주 별로 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마지막 순서에서 마이크를 잡은 샌더스는 “이제 절차를 중단하고 박수로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선출됐음을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장내는 함성이 일며 힐러리의 앞 글자 ‘H’가 적힌 수많은 플래카드가 파도처럼 흔들렸다. 샌더스는 부인 제인을 껴안은 뒤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고 기뻐 얼싸안는 이들과 발을 구르며 춤을 추는 이들로 대회장은 축제가 됐다.

8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이날과 같았다. 2008년 클린턴은 전당대회에서 주별 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도중 대회장에 나타나 “오바마가 우리 대통령이 될 것임을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오바마에게 패했던 클린턴이 오바마 선출의 주역을 맡았던 것처럼 이번엔 샌더스가 그 역할을 했다. 민주당 지지층 전체가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상징적 조치다.

그러나 클린턴에게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야 하는 숙제는 여전하다. 클린턴 후보 확정 후 대회장에선 샌더스 지지자들이 일제히 나가버리며 곳곳에 빈자리가 드러났다. 일부 지지자들은 미디어센터에 난입해 침묵 시위를 벌였다. 대회장을 나가던 샌더스 지지자 케리 가드너는 “버니가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오늘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필라델피아=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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