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스모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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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런던 포그(안개)는 유명의상의 브랜드가 될 정도로 이름이나 있다. 런던신사가 제 모양을 갖추려면 파이프를 물고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우산을 들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 모두가 런던 포그와 관련이 있다. 파이프 담배는 습기가 많은 고장에서 제 맛이 나고 코트 역시 안개 속에 멋이 있어 보인다. 우산은 더 말할 것 없다.
바로 그 유명한 런던 포그가 1952년부터 그만 악명으로 전락했다. 그 해 11월 런던 포그가 스모그로 바뀌면서 기관지가 약한 노인들이 죽어가고, 각종 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앞을 헛짚어 철길에 깔리는 사고까지 있었다. 그 무렵 영국신문들은 연일 스모그 마스크를 사용하는 방법, 기관지를 보호하는 방법들을 대서특필했다.
12월까지 계속된 스모그는 무려 4천 여명의 인명을 빼앗아가 역사상 최악의 스모그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사람들은 스모그를 「피 수프」(pea-soup)라고도 한다. 콩으로 만든 수프라는 뜻이다.
원래 안개는 우유 빛으로 묘사되어야 서정적인 무드가 있는데 피 수프 빛깔이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한 때는 피 수프라는 말 대신 「블랙 포그」라고도 했다. 먹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안개라는 뜻이다.
피 수프든, 블랙 포그든 그 원인은 역시 공해다. 영국의 경우 집집마다 난방 연료로 석탄을 피워 그런 현상이 빚어졌다.
영국정부는 뒤늦게 1956년부터 난방용의 석탄 사용을 금하는 대기오염 방지법을 만들어 스모그 추방에 나섰다. 공장의 경우만 부득이 석탄을 피워야 할 때면 반드시 탈류 장치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30년이 지난 오늘 런던 스모그는90% 이상을 추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자동차 배기가스인데, 다행히 런던은 여름엔 남서풍, 겨울엔 북동풍이 불어 자연 청소가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한가보다.
그래도 「포그」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 안개를 서정적으로 표현할 때면 포그 대신 미스트로 바꿔 쓰고 있다.
원래 미스트는 땀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를 뜻한다. 포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수증기다.
하늘이 주는 「안개」선물은 이제 악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가하게 런던 안개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 서울에도 「런던형 스모그」 현상이 사흘이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다. 밤 낮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이젠 서울 스모그를 행동으로 밀어낼 때가 되고도 남았다. 아무리 기관지가 무쇠 같은 나리들이라도 1952년의 런던 스모그는 견뎌 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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