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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중국 친구들, 쩨쩨하게 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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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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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중국의 첫 무역분쟁 상대는 한국이었다. 2000년 6월의 마늘파동이 그것이다. 한국은 저가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발동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 딱 일주일 뒤 중국은 한국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법과 규정은 무시됐다. 마늘은 1000만 달러어치도 안 됐지만 휴대폰은 5억 달러가 넘었다. 다급해진 한국이 협상을 제안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중국의 막무가내에 질질 끌려다니다 백기투항, 이면 합의까지 해주는 통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옷을 벗어야 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이들에겐 아직도 트라우마다. 지금은 관복을 벗은 A씨의 말.

“협상이 아니었다. 이런 생떼가 없었다. 날짜·장소도 자기들이 정했다. 무조건 원상회복만 주장했다. ‘왜 몇 푼 안 되는 마늘 갖고 이러느냐. 너희는 우리 중국에서 많이 벌어가지 않느냐’가 논리의 전부였다. 열심히 설득해 합의하고 나면 다음날 뒤집었다. (합의를 해준) 협상 대표를 갈아치워 따질 수도 없게 했다.”

한국을 상대한 경험은 이듬해 일본 다루기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일본이 중국산 대파·표고버섯·다다미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자 중국은 일본산 자동차·휴대폰·에어컨에 100% 특별 관세로 맞불을 놨다. “우리는 한국과 다르다”며 큰소리쳤던 일본도 별 수 없었다. 재미를 본 중국은 생떼의 적용 범위를 크게 확장한다. 무역뿐 아니라 영토·인권·정치 분쟁까지 경제로 보복했다. 2009·2014년 필리핀·베트남과의 남중국해 분쟁, 2012년 일본과 센카쿠열도 분쟁은 물론 2010년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국가에도 어김없이 경제 보복에 나섰다.

그러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전전긍긍할 만하다. 과거의 예로 봐도 100% 중국이 보복할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중국 언론도 노골적으로 경제 보복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중국은 그러나 대국답지 못하다. 대중화(大中華)의 부활, 중국몽을 이루려면 통 큰 대국이 돼야 한다. 왜 그런가. 중국이 즐겨 쓰는 사자성어로 짚어본다.

①입장 바꿔 생각해보라(易地思之)=중국의 거센 반발, 한국민은 이해한다. 코앞에 미국의 첨단 무기가 들어서니 얼마나 싫겠는가. 하지만 한국 입장도 이해해달라. 중국은 6·25 때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여전히 북한과 특수관계다. 그런 중국에 매달려 한·미 동맹을 팽개치란 말인가. 주변엔 일본·러시아도 있다. 한국은 당신들, 중국처럼 선택지가 많지 않다.

②친구 사이엔 믿음이다(朋友有信)=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사드 재고·숙고를 주문하면서 “한국 친구들(韓國 朋友們)”이라고 말했다. 친구 사이엔 믿음이 먼저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광장에 서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4조원의 분담금을 낸 것은 친구라서, 친구이길 바라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FTA는 단순히 경제 협정이 아니다. 한 나라에 대한 믿음이다. 상대의 정책·규칙·수준을 믿을 때 비로소 두 나라가 ‘한 몸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FTA를 맺은 나라다. 사드에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③많이 주고 적게 받으라(厚往薄來)=공자는 대국이 주변국과 평화롭게 지내려면 ‘많이 주고 적게 받으라’고 했다. 공자께서 어디 단순히 물건의 많고 적음을 말하셨겠나. 마음을 크게 쓰라는 뜻이다. 중국 굴기, 대중화의 꿈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변국이 칭송하고 마음으로 존경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힘으로 얻고자 하면(以力) 망할 것이요, 덕으로 얻어야(以德) 흥할 것이다.

정 안 되면 ④투명하게만 해달라(莫若以明)=노자는 밝음·투명함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경제 보복, 꼭 해야만 한다면 하라. 말린다고 듣겠나. 비관세장벽을 높게 쌓아도 좋다. 하지만 딱 하나, 투명하고 예측가능하게만 해달라. WTO·FTA를 맺어놓고 깡그리 무시해서야 어디 대국의 체면이 서겠나. 그래야 중국몽도 살고 한국도 살지 않겠는가.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