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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미래 짊어진 메이와 메르켈, 스타일은 다르지만…

중앙일보

입력

닮지 않은 듯 닮은 두 여인이 이제 유럽의 미래를 결정한다.

13일 76번째이자 여성으론 두 번째 영국 총리로 취임한 테리사 메이와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다. 메이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를 이끌어야한다면 메르켈은 이에 맞서 EU의 이익과 안정을 추구해야하는 이다.

먼저 압박한 건 메르켈이다. 그는 12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영국 새 총리의 과제는 EU와 영국이 어떤 관계를 건설하길 바라는지 분명히 하는 것”이라며 “또 탈퇴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 서한을 유럽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입장이지만 ‘새 총리’란 말로 대상을 명확히 했다.

메이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50조 발동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50조를 발동하면 2년 후엔 협상이 타결되든 안 되든 EU에서 떠나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와 가까운 필립 해먼드 외교 장관은 “탈퇴 협정이 각국의 동의를 얻어 비준되는데 4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2022년까지도 브렉시트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메이와 메르켈은 일견 달라보인다. 메르켈은 수수한 차림이다. 상의는 색깔만 바뀔 뿐 디자인은 한결같다. 메이는 패션에 관한 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챙이 있는 붉은 모자를 쓰고 매니큐어를 바르며 표범 무늬 구두를 신고 대담한 디자인의 옷도 즐긴다.

하지만 정치 리더십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분석이다. 독일의 허핑턴포스트가 메이를 두고 “영국의 메르켈”이라고 했다. “둘 다 ‘신중한 실용주의’의 경로를 보여왔다”(AP통신)는 점에서다. 신념 또는 이념형 정치가는 아니란 얘기다. 메르켈은 민감한 이슈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경계에서 기다리는 태도로 유명했다. ‘위대한 관망가(Great Procrastinator)’로 불릴 정도다.

메이도 EU 탈퇴 국민투표 국면에서 EU 잔류를 지지했으나 이민 제한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선거 운동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 덕분에 선거 후엔 잔류 진영에서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면서도 탈퇴파로부터도 지지를 받아왔다. 스스로 “잔류·탈퇴 진영 모두를 아우를 후보”라고 주장한 근거다.

메이는 그러나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뜻한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영국 내 거주하는 EU 시민들에게 “앞으로도 똑같이 살 수 있다고 보장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EU와의 협상 과정에서 다뤄질 문제라고 여겨서다.

이 때문에 둘 다 속내를 알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플랜(GMF)의 한스 쿤드나니 외교정책 분석가는 “어떤 이슈에 대해 메르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지막 순간이 돼야만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메이도 그와 비슷한 스타일로 보인다”고 했다.

사실 둘 다 대단히 어려운 처지다. 메르켈은 EU를 이끄는 지도자면서 동시에 독일의 지도자기도 하다. 연간 80만대를 수출하는 독일 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계는 영국을 호의적으로 대하길 원한다. 메르켈 자신이 난민에 관대한 모습을 보이면서 난민 문제를 키웠고 그게 영국인들을 브렉시트로 기울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메르켈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내년 하반기엔 총선이다. 한때 5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국내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EU에선 그러나 “영국에 탈퇴에 따른 고통을 줘 추가 탈퇴가 없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와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장기적으론 유럽 대륙에서 독일 우위가 강화되겠지만 당장 독일이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메이로선 메르켈의 “체리피킹(자신들에게 유리한 건만 선별)은 안 된다”는 입장을 넘어설지 관건이다. EU 단일시장에 접근하면서 상품과 서비스, 사람·자본이 자유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이가 무수히 약속했던 이민 제한을 EU가 끝내 거부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메이가 새로 꾸리는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울 것이라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메이의 대변인은 “(메이가) 정부 요직에 더 많은 여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재무 장관을 맡게 될 지 주목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해먼드 외무장관, 크리스 그레일링 하원 원내대표 등이 거론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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