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다른 도덕원리로는 같은 사회에서 살수없다〃서울대김태길교수〃마지막 강의〃이번학기로 정년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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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5일 상오10시, 서울대 관악캠퍼스 5동205호 강의실.
이번 학기로 정년퇴임하는 철학자 김태길교수의「마지막강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10여년전 이었을까. 충청도 어느 산골에 10살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강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사방은 눈인데 날씨는 매서웠다. 이때 장에서 술좀마신 아버지는 길가에 쓰러져 잠에 떨어졌다. 아들은 무인지경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아버지 춥지말라고 제겉옷을 벗어덮어주고 곁에있다가 결국 둘다 얼어 죽고말았다. 여러분은 이어린아이의 행위를 이떻게 볼것인가』
학부3학년생을 대상으로한「현대윤리학」시간.
윤리판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를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이 어린아이의 죽음과 행위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야기가 모아지지 않았다.
노교수는 말했다.
『어느행위가 어떻게 행해져야 절대로 옳은가를 논리적으로 확증짓기는 어렵다. 하나의원리를 선택한 후에야 행위의 시비판단이 가능하다. 어떤원리를 선택하나 누구나 자기의 원리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윤리학은 성립 되지않는다 .채식이나 육식은 각자가 선택해도 별문제없지만 도덕의 원리를 각자 달리선택하고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기란 어렵다.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 사생활의 원리선택엔 합의가 필요없지만 공생활엔 반드시 필요하다.』
1920년 충북중원출신인 김교수는 처음 동경제대에서 법학(형법)을 공부했으나 점차 형벌의 근원인 악의문제에 관심이 끌려 해방후 귀국하자 윤리학으로 전공을 바꿔 서울대 철학과(1회)와 미국존즈홉킨즈대대학원을 나왔다(철박).
지난49년이후 이화여대·건국대·연세대등의 교수를 거쳐 62년부터 줄곧 서울대교수로 재직 해왔다.
『요는 합리적인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을 발견하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지만 다수의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한다. 나는 도덕성의 근거를 합리성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김교수는 예나다름없이 잔잔한 미소, 칼칼한 음성으로 강의를 계속해나갔다.
수업이 끝날무렵 한학생이 꽃다발을 선사하고 박수가 터져나오기전엔 정말 이것이 정년을 앞둔「마지막수업」이란 실감이 조금도나지않을 만큼.
『학원사태는 나에게 항상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한지식인으로서 해결책이 서야하는데 어려웠다. 70년대초까지만해도 발벗고 나서왔으나 이제 속수무책인 감이든다. 교수가 해결할 범위를 넘어선 것 같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을 향하면서 김교수는 조용히 회고했다.
『윤리학』『한국인의 가치관연구』등 10여권의 저서를 낸 그는 부인 이종순여사(60)와의 사이에 1남3녀.
막내아들 도식군(21)이 서울대철학과 3년생으로 아버지의길을 잇고있다.<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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