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주사위가 맺어준「인간승리」|한번 만나본 불구한국고아 미국여인이 2년만에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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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는「파니」아줌마. 너는 이름이 뭐지?』
『용진이. 이용진』
『몇살?』
『여덟살』
한국말을 더듬거리는 파란눈의 미국인 주부가 온몸이 불에 탄 상처로 일그러진 한국고아를 눈물이 글썽해서 바라보다가 그만 꼭끌어다 품에 안고 볼을비볐다.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엄마처럼.
2일 하오3시 인천시 부개동 347 은광원(원장 이은수·63)사무실.
파란눈의 주부는 주한미8군소속 대령부인「파니·카터」여사(39).
소년은 6살 때 화재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이고아원에 수용된 이용진군(8).
이둘의 만남은 이불행한 소년을 우연히 만나 도와주려고 마음먹고서도 사소한 부주의로 정작 있는곳을 잊어버린 「카터」여사가 2년째나 찾아 헤맨 끝에 이루어진 감격스런 재상봉이었다.
남편을 따라 82년 한국에온 그녀는 미8군내의 교회를 중심으로 자선활동에 나서 혼혈아·정신박약아·지체부자유아등 불행이 겹쳐 한국가정에서는 입양하기를 꺼리는 고아들을 미국으로 보내는데 힘써왔다.
지금까지 수십명 알선해 보냈다.
「카터」여사가 용진군을 처음 만난 것은 83년.
전국각지의 수용시설을 돌다 경기도의 어느고아원에서 얼굴은 물론 손가락마저 화상으로 오그라붙은 처참한모습의 한소년을 발견했다.
「저아이도 한국에서 입양되기는 어렵겠구나」라고 생각, 우선사진을 찍어두었다.
수개월후 이곳 저곳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카터」여사는 자신의 뼈아픈 실수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의 이름이나 고아원위치등을 적어두지 않은데다 기억도 잘 나지 않았던 것.
사진을 본후부터 소년에 대한 자신의 소홀함에 죄잭감을 느껴「카터」여사는 다른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돕는 한국인 김준기씨(54)와 함께 사진한장만을 들고 기억에 남아있는 수용시설을 일일이 다시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소년이 있는 곳은 알길이 없었다.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신문사같은 곳에는 가지않으려 했다는 그녀는 2년간의 헛수고 끝에 소년을 찾기위해서는 보다 큰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 지난달 23일 중앙일보를 찾게됐다(23일자 사회면「주사위」).
경기도부천 가톨릭의대부속성가병원 간호원 김은하씨, 서울은평구신사동가정주부 심선기씨등 은광원을 아는여러독자들의 귀띔으로 쉽게 소년이 있는곳을 확인했고 그길로 달려가 용진군을 만난것이다.
「카터」여사의 너무도 티없는 애정에 두사람은 모자처럼 금방 친해졌다.
용진군은 손가락3마디중 한마디밖에 없는 손으로 글씨도 곧 잘썼다.
「은광학교1학년 이용진 8살」「친구 이귀현」.
「카터」여사는 핸드백을 뒤져 추잉껌한통을 찾아냈다.
『하나, 둘, 셋, 넷…』두사람이 함께 셈을 하면서「카터」여사는 껌을 하나씩 하나씩 용진군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친구도 껌하나, 용진도 하나, 알지?』
용진군은 6살때인 83년부모가 부부싸움을 하던중 아버지가 방안에 있던 석유난로를 엎어 불이나는 바람에 부부와 누이등 3명이 숨지고 홀로 살아남았다.
순식간에 흉칙한 모습으로 바뀐 용진군은 친척이나 사립고아원에서도 외면하여 국립고아원인 은광원으로 보내진것.
「카터」여사는 용진군의 친권자를 찾는대로 입양수속을 밟아 용진군을 친자식처럼 돌봐줄 수 있는 미국가정으로 보낼계획.
「카터」여사는「레이건」대통렁의 별장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출신.
「풍요속의 인간성결여」를 미국사회에서 절실히 느꼈다는그녀는『사람끼리 주고받는 정감이야말로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이를 안뒤부터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애정을 가장 어러운 처지의 한국고아들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근무지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세계를 돌아다녀야하는 남편까지도 그녀의 자선활동에 감복, 3년사이에 자신이 낳은 2명의 아들외에 4명씩이나 양녀를 두었다.
미8군영내의 사택도 길거리에서 오고가다 눈에 띄는대로 데려다놓은 고아들로 항상 만원.
한국에서 작은 고아원을 직접 세워 길잃은 천사들을 돌봐주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꿈이다.<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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