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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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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란의 거장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사진)가 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6세.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지난 3월 위암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1940년 테헤란에서 태어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다. 이때 영화 타이틀을 제작하면서 영화의 길로 들어섰고 70년 첫 단편 ‘빵과 길’, 74년 첫 장편영화 ‘여행객’을 발표했다. 그는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이란에 남아 40편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

그가 해외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건 87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을 받으면서다. 이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가 92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됐다. 94년엔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만들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 이어지는 ‘지그재그 3부작’을 완성했다. 97년엔 자살 뒤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찾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체리 향기’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죽음을 통해 삶을 예찬한 작품”이라고 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슬람교가 금기시하는 자살을 다뤘다며 영화의 영화제 출품을 금지했다. 뒤늦게 허가를 얻어 영화제 개막일에야 프린트가 현지에 도착해 부랴부랴 자막 작업에 들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 시상식에서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그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공개돼 이란 보수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덕에 영화의 불모지라 여겨졌던 이란은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사랑을 카피하다(2010)’, 일본에서 촬영한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2)’도 그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는 극 영화이되 다큐멘터리처럼 단조로운 형식과 이야기를 지녔다. 또 가난한 시골을 무대로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했고 시나리오대로 촬영하지도 않았다. 극사실적으로 이란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권위주의 정부의 검열과 정치적 논란을 피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정말 훌륭한 감독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감독”이라며 “영화는 동떨어진 삶보다는 거울처럼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출신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는 “영화는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으로 시작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으로 끝난다”고 칭송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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