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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one But Boris’ 성난 여론에 “나는 총리감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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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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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왼쪽)이 30일(현지시간)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집을 나서고 있다. 존슨 전 시장이 총리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원의 지지를 받는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캐머런 총리의 후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경선에서 승리하면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26년 만의 여성 총리가 된다. [런던 AP=뉴시스]

음모와 배반·반전으로 뒤얽힌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원래 배경은 영국이다. 1970~80년대 마거릿 대처 시대였다. 30여 년 만에 그 못지않은 권력 드라마가 현실에서 재연됐다.

존슨 “EU 단일시장 최우선” 기고 뒤
탈퇴진영 내부서도 “배반” 여론 악화
브렉시트 함께 이끈 고브, 대신 출마
‘제2 대처’ 노리는 메이와 남녀 대결

주인공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이끄는 과정에서 보인 카리스마로 차리 총리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그와 함께 탈퇴 운동을 이끈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다.

옥스퍼드대 동문인 둘은 많이 달랐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나온 존슨은 현란한 정치인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유머가 넘쳤다. 누구나 ‘보리스’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 친화력도 남달랐다. 런던시장을 재임했다. 그는 늘 정치적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로 묘사되곤 했다. 그가 탈퇴 진영을 선택한 건 총리가 되려는 야심 때문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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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고브

고브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으며 생후 4개월 만에 노동당을 지지하는 집으로 입양됐다. 공립학교를 나왔다. 대학 시절부터 정치에 적극적이었는데 당시 친구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다. 스스로 “총리가 되지 않겠다”며 “캐머런이 가진 스태미나도, 성정도, 다른 능력도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선지 개혁적이었지만 늘 누군가의 사람으로 머물렀다. 캐머런과는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는 막역한 사이고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의 오른팔로 여겨지던 시기도 있었다. 근래엔 ‘보리스 그리고 마이클’로 불렸다. 그는 ‘오랜 브렉시터’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캐머런과의 오랜 우정 대신 신념(브렉시트)을 택했다.

탈퇴 진영에서 존슨·고브의 2인 3각은 막강했다. 지지부진하던 탈퇴 운동의 질과 힘을 확 끌어올렸다. 둘 다 당연히 진다고 알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의 연대는 여전한 듯 보였다. 고브가 존슨을 지지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보수당 내에선 ‘보리스만 빼곤 누구나(ABB·Anyone But Boris)’란 흐름이 강해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오후 한 언론에 언론인인 고브의 부인 e메일이 공개되면서 둘 사이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드러났다. 고브와 그의 참모들에게 보낸 것으로 “존슨으로부터 확실한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과 데일리메일의 편집인인 폴 데이커가 존슨을 생래적으로 싫어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존슨 전 시장은 브렉시트 이후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혔지만 곧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개표가 끝난 뒤 종적을 감췄던 그는 더타임스 기고에서 “이민 제한은 부차적 문제이며 EU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게 최우선과제”라고 주장했다.

그간 탈퇴 진영이 했던 얘기를 뒤집는 것이었다. 브렉시트 반대론자는 물론 찬성론자들까지 존슨을 비난하고 나섰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당수는 “배반”이라고 반발했다. 존슨은 30일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동료와 논의했고 의회의 여건을 고려해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머독과 데이커가 존슨을 지지하길 거부해 고브가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으나 고브 진영에선 부인했다.

가디언에선 “대처도 누군가의 그림자였으나 치고 나와 총리가 됐다. 고브도 도전장을 냈다”며 “역사는 되풀이되는가”라고 했다. BBC에선 “존슨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는 논평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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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그와 맞서는 테리사 메이는 2010년부터 내무장관을 하고 있다. 100년 이래 가장 오래 재임한 내무장관이다. 강한 리더십에 패션감각도 남달라 ‘제2의 대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EU 잔류파지만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진 않았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가 보수당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메이가 55%의 지지율로 존슨 전 시장을 17%포인트 앞섰다.

그는 영국 국교회 성직자의 딸로 태어나 공립학교를 나왔다. 영국 중앙은행(BOE)과 민간기업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일했고 1997년 하원에 입성한 이후 원내총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밖에 리엄 폭스(54) 전 국방장관, 스티븐 크랩(43) 고용연금장관, 앤드리아 리드손 기업차관 등이 도전장을 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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