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그냥 무시, 무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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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트럼프가 한·미 FTA를 비난했습니다. FTA 탓에 미국의 일자리가 10만개 사라지고 무역적자가 두 배나 늘었다더군요. 그러자 미 국제무역위원회가 정반대의 통계를 내놨습니다. 한·미 FTA가 미국에게 48억 달러(약 5조 6000억 원)의 수출 증가 효과를 안겨줬다는 겁니다. 또 미국의 대한 적자는 지난해 283억 달러였는데, 한·미 FTA가 아니었다면 440억 달러가 됐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미국 일자리 10만개가 사라졌다지만, 만일 FTA가 없었다면 수십만개가 더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혜택은 국민 전체에게 골고루 돌아가지만, 피해는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전형적인 사례가 FTA입니다. 이를 간파한 트럼프는 혜택에 대해선 눈을 감고, 피해집단의 분노를 연신 자극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공화당 정부가 성사시킨 것인데, 이젠 같은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아예 없애려 작정을 한 듯합니다. 미국의 정책 일관성이란 게 겨우 이 정도인가요.

하지만 트럼프가 아무리 황당한 말을 해도 그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라는 점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규제개혁과 시장개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연히 화를 돋우거나, 매 맞을 일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임직원이 올해도 성과급을 받는다 합니다. 두 은행은 정부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규정에 따라 기관장 30%, 등기임원 55%, 직원 110%의 성과급이 지급된다는 겁니다. 구조조정은 잘못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지원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덕이라 합니다. 여론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벌써부터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두 은행 임직원은 올해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까요.

더민주당이 가족 채용을 하다 들통난 서영교 의원에게 중징계 결정을 내렸습니다. 징계수위는 윤리심판원이 추후 정한답니다. 중징계라 함은 당원 자격정지 또는 제명인데, 의원 신분을 잃진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쯤 되면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과 기능은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그에게 모두 등을 돌린 건 아닙니다. “그냥 무시 무대응하세요.” 더민주당 박완주 원내 수석부대표가 서 의원에 보낸 응원 문자입니다. 감싸주려는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서 의원은 중징계에 대해서도 무시·무대응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그냥 세비만 받아가는 유령의원으로 4년을 보내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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