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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칫돈 945조와 강남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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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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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지난주에 이은 썰렁 아재 개그 2탄.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좋은 사람(好人)’일까. 답은 그렇다. 걍, 호인(好人)이니. 좋은 사람의 특성 중 하나가 ‘뜨뜻미지근’이다. 강 장관의 주택론도 ‘뜨뜻미지근’이다. 지난해 11월 취임 때 그는 “주택 시장은 활활 타도, 식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후끈 달아올라 2~3년 뒤 입주 대란이 걱정되던 때였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급등해 부동산 양극화 우려도 컸다. 강북 아파트의 4배이던 강남 아파트 값은 5배 넘게로 벌어졌다. 시장에선 “한가한 소리”라며 신임 장관이 구두 개입도 하고 돈줄도 조이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에둘러 말했다. ‘정책 딜레마’라고.

“최경환 경제팀의 첫째 과제가 부동산 띄워 경기 살리기였다. 그 중심에 강남 선도(先導)론이 있다. 강남 아파트가 먼저 올라야 강북→수도권→지방의 집값이 뛴다는 거다. 재건축 규제를 모조리 푼 것도, (재건축으로 흘러가는) 돈줄을 조이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최경환은 실세 중 실세 경제부총리였다. 신임 국토부 장관이 (소신이 어찌 됐든) 경제팀장인 최 부총리의 정책을 거스를 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년여가 흘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자고 나면 1000만원씩 올랐다. 한 달 만에 3억원이 오른 곳도 있다. 투기 광풍이 몰아친 분양시장은 복마전이 됐다. 뒤늦게 28일 국토부는 대책을 내놨다. 9억원 넘는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만시지탄이요, 효과도 의심스럽다. 강남 재건축과 찰떡궁합, 떠도는 뭉칫돈(단기 부동자금) 약 1000조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떠돌이 뭉칫돈은 고수익을 쫓는 본능이 강해 흔히 스마트머니로 불린다. 주로 저금리 때 늘어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540조원에서 최근 945조원으로 10년도 안 돼 덩치를 두 배로 불렸다. 이름만 스마트지 실체는 ‘겁먹은 돈’이다. 주식투자는 크게 깨 먹을까 겁내고 예금은 이자가 안 붙어 (원금이 줄어들까) 겁낸다. 먹잇감을 찾으면 떼로 달려드는 습성 때문에 대형사고를 자주 낸다. 강남 재건축은 겁먹은 돈이 물기 좋은 최고의 미끼다. 결코 손해 보지 않을 것이란 믿음, 강남 불패신화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남 재건축과 겁먹은 돈의 찰떡궁합을 떼어놓으려면 ①강남 불패신화를 무너뜨리거나 ②뭉칫돈의 다른 물꼬를 터줘야 한다.

여기서 강호인의 두 번째 정책 딜레마가 생긴다. ①은 쉽지 않다. 잘못 건드리면 전국이 얼어붙을 수 있다. 경기 부진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쓸 수 있다. 국토부의 속내는 이렇다.

“강남 재건축은 희귀재·사치재다. 규제할수록 가치가 더 뛴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못’을 박으면 잠시 틀어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더 크다. 기존 아파트 값만 더 오른다. 뭉칫돈은 뒷길로 돌아 상가·빌딩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것도 막으면? 부동산 시장 전체가 얼어붙을 것이다. 브렉시트까지 겹친 마당에 대못 규제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②는 애초 국토부 장관의 소관 밖이다. 중위험 중수익 금융상품 개발, 민자 사업 활성화, 신산업 육성 등 대체 투자처 마련이 정공법이다.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가 미적거리거나 ‘부자 입법’이라며 국회에서 막힌다.

이해는 간다. 그래도 국토부 장관이 총대를 메야 한다. 강남 아파트의 과열·광풍을 못 막으면 나라가 망한다며 유일호 경제팀을 설득하고, 안 되면 국회·청와대에도 달려가야 한다. 강호인은 최근 영남권 신공항이란 난제 중 난제를 ‘제3의 길’로 돌파했다. 가덕도와 밀양,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장관 경질론’이 나올 위기를 절묘하게 탈출했다. 나라를 구하고 장관 자신을 구한 ‘신의 한 수’로 불릴 만했다. 그 강호인의 대책이 ‘9억원 넘는 아파트 돈줄 죄기’뿐이라니 실망스럽다. ‘뜨뜻미지근’ 소신엔 맞을지 모르나 또 다른 ‘신의 한 수’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