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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끈한 올랑드 "런던의 유로화 결제 기능 박탈해야"

중앙일보

입력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을 떠난 영국이 앞으로 유로화 거래 청산(clearing)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랑드는 28일(현지시간) EU 정상회의가 열린 브뤼셀에서 "런던은 EU 덕분에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을 위한 청산소를 운영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며 "유럽을 끝장내려 한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교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부를 둔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국가가 아닌 영국 런던의 금융가(더 시티)가 유로화를 청산하는 건 부당하다며 유로화 청산 권리를 빼앗으려 했으나 영국과 EU 법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청산소는 주식·파생상품 등을 거래할 때 어느 한쪽이 부도나더라도 다른 한쪽이 지급받도록 보장해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에 금융 거래에 필수적이다. 유로화 거래 청산 기능을 박탈당할 경우 런던의 국제 금융 허브 위상에 타격이 예상된다.

잔류 의견이 많았던 런던은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별개로 독자 행보 움직임을 보였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런던 시민은 국민투표와 다른 길에 표를 던졌다. 영국의 수도 런던의 경제를 보호하려면 중앙 정부로부터 공공 지출을 포함한 자치권과 자기 결정권이 지금 당장 더 확보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스코틀랜드도 EU 잔류 가능성을 모색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브뤼셀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마르틴 슈츠 유럽의회 의장을 만나 스코틀랜드의 지위 문제를 논의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소속 알린 스미스 의원은 유럽의회 특별 세션에서 "스코틀랜드를 대표해 이 자리에 선 나는 자랑스러운 스코틀랜드인이자 유럽인"이라며 "내 조국이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친환경적인 유럽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시간 패장(敗將)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정상들과의 ‘최후의 만찬’을 했다. 종종 웃음 소리가 났지만 분위기는 대체로 무거웠다. 한 북유럽 정상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죽은 사람인데 좋은 얘기밖에 무슨 얘기를 더하겠느냐”고 말했다.

캐머런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동료 탈퇴 운동가에게 (탈퇴 후 모델에 대한) 계획이 없다”며 “9월 7일 새 총리가 선출돼 영국이 어디로 갈지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이 유럽에 등을 돌리려는 건 아니다. 만일 이민 통제를 허용했더라면 브렉시트를 피할 순 있었다”고 말했다. EU의 이민정책 실패가 브렉시트의 이유 중 하나란 점을 거론한 것이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이민 통제와 주권 회복이 주된 쟁점이었다. 캐머런의 오랜 동지인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영국은 정치적·헌법적·경제적으로 붕괴 중”이라며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이 노르웨이처럼 유럽경제지역(EEA)란 틀 속에서 유럽 단일시장에 접근하면서 동시에 이민 통제를 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메르켈은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것만 얻어내겠다는 체리 피킹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EA 국가들의 경우 EU에 국경 통행의 자유를 통해 이민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EU에 비판적인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EU는 이미 국민들의 감옥이 됐다. 자기 모순으로 붕괴된 옛 소련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국민투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국민의 봄(People’s Spring)은 이제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하원은 극우정당 자유당(PVV)이 발의한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 투표안’을 부결했다. 재적 의원 150명 중 14명만 찬성했다. PVV의 헤이르트 빌더스 당수는 그러나 내년 총선을 계기로 다시 시도하겠다고 별렀다.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4%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찬성했으나 EU 탈퇴 지지는 48%였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28일 CNBC에 출연해 “브렉시트 결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정치적 실수”라며 “브렉시트로 영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으며, 확률은 50대 50”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브렉시트로 인한 글로벌 경제 불안에 대응할 화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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