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6 경기 상징물 당선작 취소… "작품 새로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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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시는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 상징조형물의 당선작을 취소, 백지화하고 동일작가에게 새로운 작품을 내도록 했다.
이에따라 서울시는 지난달30일 88서울올림픽 상징조형물 당선작가 김중업씨(63·건축가) 와 86아시안게임 상징조형물 당선작가 김세중씨(58·조각가)에게 이같은 방침을 각각 통보하고 오는30일까지 새작품의 기본설계도를 제출토록 요청했다.
당선작가의 기득권만을 인정하고 작품당선은 취소한 이같은 서울시방침에 대해 두 작가는 일단 응하기로 했으나 관계당국의 일관성없는 조치가 원로예술가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한데 대해 미술계는 충격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올림픽 조형물을 현상공모한 것은 지난해 12월.
그때 응모된 26개 작품과 추천작가 5명의 작품등 31개 작품을 놓고 심사(9월10일), 9월l6일 김중업씨의 작품(88문)을 88올림픽 조형물로, 김세중씨의 작품(86탑)을 86아시안게임 조형물로 확정, 발표했다.
이에따라 서울시는 아시안게임 상징조형물은 86년9월 아시안게임전까지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남쪽 아시안공원 입구에, 올림픽 상징조형물은 88년 상반기까지 둔촌동 1만여평의 울림픽공원 입구에 각각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10월4일 갑자기 올림픽상징조형물 건립소위원회를 열어 86조형물 건립계획은 취소하고 88조형물은 모양을 바꾸도록 결정했다.
이같은 사실은 작가에게는 10월15일에야 정식으로 통보됐으며 서울시당국자는 이때 양인의 합작을 종용했다.
그러나 김중업·김세중씨는 그 다음날 회동한 자리에서『각자의 철학이 다르고 분야도 다르기 때문에 합작이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같은 두작가의 합작불가결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합작하는 길밖에 없다고 계속 주장했다.
김중업씨는 최근 『합작은 절대 안하겠다. 공개작품전을 열어 국민의 심판을 받고 당국의 부당성을 성명하겠다』는 강경한 뜻을 서울시에 전달,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30일 김씨의 「합작불가」의지가 확고함을 확인,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음을 전하고 『좀더 웅장하고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내달라』고 양인에게 공식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김중업씨는 『다시 한번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기념작을 만들고 싶은 의욕 때문에 이를 수락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심사에 참가했던 미술평론가 이일씨는『심사위원들이 기탄 없이 토의, 기명투표로 공명정대하게 뽑은 작품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백지화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심사결과에 따르지 않고 당국자의 취향대로 한다면 누가 심사를 맡을 것인가. 심사위원은 들러리가 아니다. 전문가들이 결정한 사실을 놓고 「기념비적 성격이 적다」「미래지향적이 아니다」「상징성이 약하다」고 트집을 잡는 것은 심사위원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두 작가의 작품을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했으나 확정과정에서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86아시안게임조형물 건립은 일단 취소하고 「될수있으면」올림픽조형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무작정 시간을 끌수만도 없어 다시 두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밝혔다. 또 두 사람에게만 작품을 의뢰하는 것은 『26명의 응모작가와 5명의 추전작가 가운데 일단 두 사람의 작품이 선정됐으므로 우선권이 인정되고 다시 모든 작가를 상대로 재공모하는 것은 번잡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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