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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힘들 땐 내 인생의 관객이 돼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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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으로 항상 불안한 30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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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심수휘 기자

Q. (요샌 회사도 그만두고 싶어요) 30대 초반 미혼 남성입니다. 저는 항상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하고 두근거려 일상생활이 괴롭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서 주말에는 집에만 있습니다. 회사를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합니다. 괴로워도 버티며 계속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걸까요.

저 같은 성격을 강박적 성격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강박에 맞서지 말고 ‘수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수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냥 참는 것인지요? 그리고 강박증의 약물치료에 대해 검색해 보니 부작용도 많던데요. 마음병이나 생각병이 약물로 치료될까 의심스럽습니다. 불안만 잠재우는 임시방편 같은데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약물로 막을 수 있을까요.

A. (약물치료·심리요법 병행해 보세요) 강박적 사고나 행동은 불안이 과도하게 증가했을 때 나오는 현상입니다.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 집에만 있고 싶고 회사까지 그만두고 싶다면 불안이 내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우선 권합니다. 불안 증상이 적절한 수준이면 수용 등의 방법을 활용해 불안을 조절할 수 있지만, 불안이 심해지면 불안을 심리적으로만 대처하려다 불안을 더 키우고 내 뇌의 에너지도 더 고갈시킬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안 강박 증상이 심할 때 최선의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심리요법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안이 커지다 보면 부정적인 부분들이 더 크게 보이죠. 오늘 사연처럼 인터넷에서 강박증 약물치료에 대한 정보를 볼 때도 부작용이 더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약물로 마음병이 치료될까 의심도 생기고요. 그러다 보면 약물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커져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안이 심하면 뇌가 지쳐 긍정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우선 약물로 불안 강박 증상을 누그러뜨려 지친 마음이 다시 충전될 수 있도록 하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나 지나치게 미래를 걱정하는 성향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묵묵히 참고 견딘다고 안 나아져

수용이란 용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수용이 뭔지 묻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수용이란 것이 괴로운 상황에서도 그걸 그냥 수용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생각에 매여 괴롭고 힘들어도 계속 수용하면 정말 불안이 도망가는지, 강박적 생각을 애써 무시 말고 수용하라는데 무시와 수용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죠.

먼저 수용이라는 마음 관리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용은 마음을 강제로 조정하지 말자는 이야기인데요. 정의는 간단한데 실제는 어렵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 관리법에서 수용이란 마음을 조정하지 않고 불안을 누그러트려 마음을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용이란 단어의 일반적인 뜻에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다 보니 오해가 생겨 수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조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수용을 억지로 내 괴로운 상황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나 내 힘든 상황을 강제로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한발 물러나 보는 마음의 여유를

수용이란 단어가 이렇게 어렵고 혼란을 준다면 다른 표현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내 인생을 주인공이 아닌 관객으로 보는 연습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살고 있죠. 따로 연기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내 인생이기 때문에 모두가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배우가 자기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요. 영화를 주인공으로 찍는 중에는 감상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시사회 때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볼 때 자신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우리도 내 인생을 잘 감상하려면 가끔은 관객의 입장에서 내 인생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공일 때는 불안하고 속상하고 우울한 내 삶의 내용도 관객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여유가 생기고 삶의 무게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 영어로 common humanity 란 용어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의미를 풀면 ‘인생 다 비슷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으로 삶을 느낄 땐 ‘왜 내 인생만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발짝 물러나 관객으로 내 인생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 인생이 비슷하구나’하는 마음의 여유가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컬처 테라피 | 양희은의 ‘산책’ , 하늘에 나를 비춰보는 산책

그럼,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관객으로 볼 수 있을까요. ‘관객으로서 내 인생을 보자’로 마음에게 명령한다고 갑자기 관객의 마음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자연과 문화를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프로젝터, 혹은 빔이 하나씩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늘에 내 마음이 빔으로 쏘아져 하늘에 비친 내가 나를 관객으로 보는 현상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비슷하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는 것 같지만 특정 캐릭터에 내가 빔으로 쏘아져 캐릭터에 비친 내가 나를 보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문화 콘텐트가 음식처럼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인류와 함께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애환을 위로해 주고 힘을 주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이유라 생각됩니다.

산책할 때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를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양희은의 노래 ‘산책’입니다. 이효리의 남편인 이상순의 기타 연주도 함께 곁들여져 참 좋습니다.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너와 걷는 거리/ 너와 함께한 날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한 번 더 눈에 담는다/ 너를 눈에 담는다/ 너를 눈에 담는다.’ 불안은 생존을 위한 감정 반응인데 우리가 불안해하면서까지 생존을 하려는 이유는 내 눈에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더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요. 그런데 생존에 너무 내 마음이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소중한 내 삶을 보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가벼운 산책을 해보세요. 내 삶의 관객으로서 내 삶을 바라보기를 추천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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