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패치·줄기세포·빅데이터…완치 도전 계속된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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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숨진 전 세계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중국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들은 모두 파킨슨병 때문에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강한 힘과 권력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뇌 질환인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을 정복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길을 비추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과학기술이란 ‘등대’다. 발전하는 파킨슨병 치료법을 알아봤다.

▲ 파킨슨병에 걸리면 도파민이 줄어 운동장애·우울증 등을 겪는다. 천재 복서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왼쪽부터)도 파킨슨병을 앓았다.

파킨슨병은 고령층에게 치매 다음으로 흔한 뇌 질환이다. 뇌의 신경세포가 서서히 사라지는 병이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만드는 세포가 큰 타격을 입는다. 도파민은 감정과 운동 조절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움직임감소·뻣뻣함 같은 운동장애, 수면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큰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병을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다. 최근 국내 파킨슨병 환자 4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절반가량인 52%가 자신의 증상이 파킨슨병인지 몰랐다고 답했다. 노화나 지병에 의한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소변장애·변비·불면증·기억력저하와 같은 비운동성 증상이 파킨슨병 때문인지도 헷갈린다. 환자 10명 중 3명이 진단 전 이런 증상을 겪었다고 했다. 특히 증상이 나타난 지 6개월 이상, 길게는 5년 이상이 지난 뒤에 이 병으로 확진 받은 환자가 응답자의 49%나 됐다.


원인 정확히 몰라 완치 어려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 수는 지난해 9만660명으로 5년 전보다 2만명 이상 늘었다. 세계 파킨슨병 환자는 약 500여 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인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현재 완벽한 치료법도 없다.

병이 진행될수록 운동장애, 합병증 등으로 사망률은 커진다. 대만에서 파킨슨병 중증도에 따른 환자 생존율을 분석했더니 중증이나 말기 파킨슨병(합병증을 앓거나 스스로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3%, 10년 생존율은 14%에 불과했다. 피부암인 흑색종 말기(4기) 환자의 생존율(미국 기준 10년 10~15%)과 비슷한 수준이다. 위암이나 대장암 말기 환자와 비교하면 10년 생존율이 10%포인트 정도 낮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의 핵심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본치료는 약물이다. 1960년대 개발된 도파민 전구체 레보도파(L-DOPA)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약물로 신체 활동 시간 늘려

도파민 전구체는 뇌에서 도파민으로 바뀌는 물질을 말한다. 줄어든 도파민을 늘려 운동 이상 증상을 억제하는 원리다. 특히 초기 파킨슨병 환자에게 효과가 좋다. 사용 후 2~3년은 부작용 없이 떨림이나 경직 같은 증상이 크게 준다. 이를 ‘허니문 기간’이라 부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치료 효과와 지속 시간이 서서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약물이 신경세포 자체의 손상을 막지 못해서다. 소화 기능이 줄어 흡수량을 조절하기도 어려워진다. 도파민 농도 편차가 커지면 이상운동증?환각 같은 부작용이 심해진다. 전신운동기능이 떨어지면서 환자는 물론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도 점점 커진다.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김희태(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회장은 “중증의 말기 파킨슨병 환자와 가족은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환자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적극적 치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말기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치료법 중 하나가 소장에 겔 형태로 직접 도파민 전구체를 주입하는 것이다. 약이 담긴 휴대용 펌프를 소장에 연결하고, 약물 주입 시간과 용량을 설정하면 도파민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실제 영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이 방식이 먹는 약보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희귀질환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국내 연구진이 선보인 ‘의료용 전자패치’도 눈길을 끈다. 파스처럼 몸에 붙인다. 여기에는 근육운동을 감지하는 센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전자히터, 약물이 담긴 나노입자(1nm는 10억분의 1m)가 내장돼 있다. 근육에 이상이 감지되면 센서가 이 정보를 메모리로 보내 상태를 진단하고, 전자히터가 작동하면서 나노입자를 녹여 약물을 주입한다. 배터리 등을 보완하면 수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뇌에 전극을 삽입하기도 한다.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이런 뇌심부자극술은 이미 2002년 FDA로부터 승인받은 치료법이다. 김희태 회장은 “뇌심부자극술은 말기 파킨슨병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며 “매년 120~130건가량 시술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극 삽입하는 시술로 뇌 자극

신경회로를 조절해 운동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약물 복용량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5월 노인성 뇌 신경질환 치료를 위한 뇌지도(뇌 구조·기능 연결을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2023년까지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뇌지도가 작성되면 보다 정교한 치매, 파킨슨병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줄기세포도 주목 받고 있는 기술이다. 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다. 건강한 도파민 신경세포를 분화시키고, 망가진 신경세포를 대체하는 것이 치료 원리다. 최근 차병원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로부터 파킨슨병 등에 대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조건부 승인 받으면서 관심이 한층 커졌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사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예를 들어 수정란(배아) 줄기세포나 태아 유래 신경줄기세포는 분화 효율이 뛰어나지만 윤리적인 문제로 연구에 제한이 많다. 역분화줄기세포(유도만능줄기세포·iPS cell)는 체세포에 특수한 유전자를 도입해 만든다. 배아줄기세포와 같이 분화 효율이 높다. 그러나 유전자 도입에 바이러스를 활용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성인의 골수나 혈액에 있는 성체줄기세포는 안전하지만 분화 효율이 낮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밖에 기존 신경세포와의 연결성, 면역거부반응 등 이식 부작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빅데이터로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인 인텔은 2014년부터 파킨슨병 환자에게 스마트 시계를 보급해 운동량, 손 떨림 정도, 수면 정보와 같은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운동 증상, 약물 효과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활용한다는 목표다. 현재 4000명이 넘는 파킨슨병 환자가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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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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