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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건 아닌 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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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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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엄마, 이 문제 좀 풀어봐.” 기말고사를 앞둔 아들이 학교 영어 기출문제를 하나 던진다. 보기 좋게 틀렸다. 이번엔 국어 기출문제. 또 틀렸다. 아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 틀린 거, 다 틀렸네.”

실력 없는 사람이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이 문제 탓한다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한국 학교 시험은 실력 가늠용보다 오답 유도 기능이 더 크다”는 주변 엄마들의 불만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문제였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틀리라고 낸 문제임이 분명했다. 숱하게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푼 공부 열심히 한 아이들만 맞힐 수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대체 왜 이런 문제의 정답을 맞히자고 아이들이 밤잠 안 자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검색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끄집어 쓸 수 있는 ‘구글 노잉’의 시대가 열리면서 단순 지식보다 사고력이 훨씬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럼에도 단순무식한 암기나 출제자 의도를 파악하는 문제풀이 요령 습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기본 소양을 쌓고 공부하는 자세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틀리라고 덫을 쳐놓은 문제의 정답 맞히기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이건 교육이 아니라 그저 괴롭히기라고 말이다. 상대평가인 내신등급 조절을 해야 하는 중·고교 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교육을 왜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면 답은 나온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데도 부모는 어쩔 수 없다며 장단을 맞추고, 그 바람에 아이들만 죽어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교육을 하면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말대로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도록 강요받은 만큼 과거보다 여건이 나빠지면 스스로 노력하기보다 국가 시스템에만 요구하고,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에 열광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현실화한, 일자리를 위협받는 성난 저소득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멀리 미국·영국까지 갈 것도 없다.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 탓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핑계를 대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안 혜 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