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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난임시술, 배아 하나만 이식해 합병증 위험 높은 다태아 임신 예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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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원장은 “난자 채취, 배아 배양·이식 등 시술의 모든 과정에 공을 들이면 배아 하나로도 임신하는 데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프리랜서 임성필

이식하는 배아 개수
임신 성공률과 무관
단일배아이식 시술
출산 성공률 더 높아

2009년 미국의 한 난임 전문의의 면허가 취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덟쌍둥이를 낳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시험관아기 시술 시 여성의 몸에 필요 이상의 많은 배아를 이식하는 의사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다태아가 생길 수 있다. 임신 가능성은 높여주지만 아이와 산모의 합병증 위험을 크게 높인다. 해당 의사는 환자 건강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면허를 취소당한 것이다.

[인터뷰] 대구마리아병원 이성구 원장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축복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의학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임신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시험관아기 시술을 가장 많이 하는 대구마리아병원 이성구 원장은 이런 세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배아 하나만 넣어도 여러 개 넣은 것과 임신율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여러 개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의견에 다른 난임의들도 동의하기는 하지만 임신율을 높이는 노하우가 없는 의사들은 단일배아이식을 아직도 두려워한다.

이성구 원장을 만나 현재 우리나라 시험관아기 시술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다.

다태아 임신 합병증 발생률 42%

이성구 원장이 다배아이식(배아를 두 개 이상 이식하는 것)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다태아(쌍둥이나 세쌍둥이 등)에게 생길 수 있는 여러 합병증 때문이다. 다태아를 임신한 여성은 유산이나 조산, 태아 기형 등 다양한 합병증을 가질 확률이 42%로 보고돼 있다. 이는 단태아 임신의 최고 7배에 달하는 수치다.

자궁 하나에 여러 개의 태아가 자라면 태반이 불안정해진다. 임신이 지속되지 못하고 유산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임신이 끝까지 유지되더라도 문제가 생기기 쉽다. 사람은 ‘단태’가 기본이다. 신생아 두 명 이상이 자궁에 자리 잡으면 결국 임신 말기로 갈수록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임신 주수(週數)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조기 출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저체중아(미숙아 등) 출산으로 이어진다.

이 원장은 “불과 한 달을 덜 채우고 나오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병원도 단일배아이식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2008년 이전에는 다배아이식을 했는데, 다태아가 너무 많이 태어나 지역 신생아집중치료실이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특히 심장·폐 이상이 많아 위험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단일배아이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엄마 배 속 공간이 협소하면 아이의 손·발가락이 눌려 기형이 되기도 한다. 눈과 귀가 완전히 발달하지 못해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거나 난청을 겪는 아이도 많다. 다태아 임신은 산모에게도 위험하다. 혈압과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임신중독증이 생기기 쉽다. 자궁 외 임신 가능성도 높아 아이 둘 다 유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단일배아이식 중요, 임신율에 영향 없어

이성구 원장은 단일배아이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태아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을 줄이려면 배아를 하나만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산모들은 임신 성공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실제 배아 이식 개수와 임신 성공률 사이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태아를 임신하면 중간 유산이 많으므로 결국 최종 출산 성공률은 단일배아이식이 더 높거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당장 임신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임신이 지속돼 중간에 유산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느냐, 그리고 출산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이 원장의 말이다.

최근엔 배아배양술이 발달해 최고의 배아 하나만 선별할 수 있게 된 점도 지적된다. ‘서울에서 김선생 찾기’와 비슷한 확률로 여러 배아를 이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일배아이식의 중요성을 인지한 정부도 무분별한 배아이식을 제한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관련 법을 개정한 상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15년 전부터 시행돼 온 법령이다. 35세 이전에는 1개, 이후에는 2개, 고령이며 특수한 경우만 3개 이식 등으로 법을 개정해 예전처럼 무턱대고 3~5개를 이식하던 관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배아 배양·착상 잘 시키는 게 관건

그는 단일배아이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환자 케어나 배아 배양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질 좋은 배아 하나를 골라 착상이 잘 되도록 이식하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다.

대구마리아병원의 경우 대부분의 배아를 ‘공(共)배양’한다. 난자를 다른 세포와 함께 배아로 성장시키는 것인데, 연구원들이 일일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수고는 많이 들어도 훨씬 좋은 배아를 만들 수 있다.

또 난자와 정자의 미세한 결함까지 선별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도입하고, 숙련된 연구원의 배아 배양 기술력을 더했다. 이 때문에 단일배아이식을 해도 다배아이식과 같은 임신 성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이 원장은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실제 시험관아기 시술 경험자다. 군의관 시절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아 8년간 네 번의 시험관아기 시술 끝에 첫아이를 얻었다. 이 원장이 산부인과 난임을 전공하게 된 계기였다.

시험관아기 시술 과정에서 여성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기 때문에 임신 확률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 연구에 몰두했고, 여성의 불편함과 건강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시술법들을 개발했다.

그는 진료를 보며 항상 생각하는 글귀가 있다며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의사는 사(死) 앞에서 일한다. 하지만 난임 의사는 생(生) 앞에서 일한다. 단순히 ‘태어나게 함’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고 건강하게 살며,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도 문제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는 대목이다. 그는 난임의사라면 그런 책임감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성구 원장은 …

1995년 서울대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줄곧 난임 연구와 임상에 몰두했다. 지금까지 시험관아기 시술 5만례 이상, 냉동배아이식 시술 1만례 이상으로 국내 최다 시술 경험을 갖고 있다. 다배아이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2008년 단일배아이식을 하겠다고 선언해 난임의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단일배아이식술 분야에서 독보적 1인자(1만5000례 시술)가 돼 최저의 쌍둥이 출산율, 최고의 임신 성공률을 자랑하며 국내외에서 명의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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