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6)제84화 올림픽 반세기(5)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 선수단이 묵게된 선수촌은 런던 교외의 「엑스브리지」 캠프로 원래는 영국 공군부대 병사였다. 막상 도착해보니 떠날 때 걱정과는 딴판으로 우리 선수단이 제1착이었다.
선수촌 게양대에 태극기를 높이 올린 우리 선수단은 곧바로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우리 선수들은 오랜여행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선수촌의 시설은 우리에겐 낯설 정도로 훌륭했고 군인들이 쓰던 각종 운동시설도 그대로 있어 만족스러웠다.
런던 시가지는 전쟁중 폭격 당한 자리가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서 부닥친 이국의 풍경은 동방의 은둔국에서 온 우리들을 당황하게 했다.
틈을 내어 「하이드파크」를 구경갔던 이유형 선수(축구)는 수백쌍의 청춘남녀들이 제각기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몸부림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해괴하다 못해 끔찍스럽더라고 했다.
또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이 꽤 많았는데 그녀들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 사랑하는 남편·아들·연인을 보내놓고 무엇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겠느냐』며 오히려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영국은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아직 경제적인 곤경을 겪고 있었다. 쿠폰제가 실시돼 담배 한 갑을 사려해도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이 같은 사정을 동정해 외국에서도 원조가 잇달아 스웨덴은 목재 1백27t, 아르헨티나는 말(마) ,아이슬란드는 요트, 캐나다·호주·스웨덴 등은 식량을 제공했다.
런던의 날씨는 춘하추동 기후가 모두 섞인 듯 변화무쌍했다. 비가 잦은데다 새벽과 저녁은 흡사 겨울날씨처럼 추웠다. 고국에서 처음 두껍고 투박한 단복을 입었을 땐 『삼복 중에 무슨 겨울옷이냐』고 불만도 있었으나 런던에 와보니 동복을 마련해준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보도진으로 유일하게 선수단과 동행한 서울중앙방송국의 민가호 아나운서는 분주하게 BBC방송국을 오가며 교섭을 벌인 끝에 BBC해외방송을 통하여 대회기간중 매일 15분씩 우리 선수들의 활약을 고국으로 방송하게 됐다고 좋아했다.
7월 23일엔 선수촌을 「월스드」 중학으로 옮겨 우리 선수단만 오붓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음식 때문에 고생하던 선수단은 이곳에서 중국인 요리사 2명을 채용, 우리 음식과 비슷한 요리를 해먹게 돼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몸집이 좋은 역도선수 남수일은 『자꾸 몸무게가 줄어드는데 무슨 수로 경기에서 이긴단 말이냐』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7월29일 드디어 개막식 날이다. 「엠파이어 스타디움」에 운집한 10만 관중과 59개국 4천 여명의 선수들 앞에 자랑스런 태극기를 휘날리는 날이다.
코리아의 입장은 29번째. 회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우리 선수단이 태극기를 높이 든 손기정을 선두로 당당하게 입장했다 (손은 부산에서 맹장수술을 마치고 홀로 먼길을 돌아 21일 도착했다).
관중들의 우렁찬 박수갈채속에 입장하는 우리 선수단은 이 꿈같은 현실이 감격스러워 눈시울을 적셨다.
민가호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울먹였다. 『런던 하늘에도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에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가득 차 있건만 저 태극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하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하리라마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