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책사업으로 장난치는 구태 사라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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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확장이란 ‘제3의 길’로 결론 나면서 지역 정치권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대구의 한 신문은 1면을 백지로 내는 파격적 편집으로 밀양 신공항 유치가 좌절된 불만을 표출했다. 김부겸·김영춘 등 대구·부산에서 당선된 야당 의원들도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며 신공항 건설 추진을 거듭 주장했다.

신공항 유치 무산에 따른 지역사회의 서운함과 허탈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밀양이나 가덕도에 공항을 지을 경우 인천공항에 맞먹는 6조~11조원이 들어간다. 안전성·접근성을 고려하고 영남권을 두 동강 낼 만큼 극심했던 지역갈등을 생각해도 김해공항 확장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영남 정치권과 주민들이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정신을 보여줘야 할 이유다.

걱정되는 것은 내년 대선이다. 김무성·문재인·안철수·박원순 등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 상당수가 부산·경남 출신이다. 이들이 표몰이를 위해 또다시 신공항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도 집권하면 시간만 질질 끌다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우려가 크다. 전임 대통령들이 직면했던 걸림돌들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국론분열과 국력소모는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

신공항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에도 문제가 크다. 정연국 대변인은 22일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이라며 공약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면피성 말장난일 뿐이다. 밀양·가덕도 중 어느 곳에 ‘새 공항’을 짓느냐가 문제의 핵심이었는데, 기존 공항 확장에 그쳐놓고 ‘신공항’이라 주장하면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한 신공항 건설이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행정력만 낭비한 끝에 백지화된 데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순리다.

여야 정치권도 신공항 논란으로 갈라진 민심을 다독이면서 사회통합에 힘쓰는 한편 김해공항이 글로벌 허브 공항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끔 협조해야 한다. 다시는 표를 노려 대형 국책사업으로 장난치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