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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국의 KEDO 탈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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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의 핵 재처리 완료 주장을 둘러싸고 한반도 위기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 정부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에서 탈퇴하겠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1994년 북.미 간 기본합의에 근거, 합의사항 실천을 위해 설립됐던 KEDO가 북한의 핵 동결 약속 파기와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 등으로 타격받은 것이 사실이다.

또 KEDO의 핵심 사업인 경수로 건설도 북한이 핵문제에 있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중단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KEDO와 북측 간의 핵안전조치협정 체결 없이 경수로의 핵심부품 공급은 불가능하고 북측이 이에 응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분히 기술적 문제가 개입된 만큼 이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이 KEDO 집행이사국 탈퇴를 고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에 쉽게 공감할 수 없다. 누구보다 미국이 잘 알듯이 KEDO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 시혜 차원에서 설립된 것이 아니다.

탈냉전기의 분쟁 해결과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다자간 장치를 시도해 본다는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북한을 고립에서 끌어내 국제사회의 운용논리에 익숙토록 훈련시킴으로써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역내 평화에 기여한다는 중장기적 필요성에 대한 고려도 작용했다.

그리고 그런 요구는 북핵문제가 충돌을 향해 치닫는 현 상황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도 있다고 본다. "경수로 사업의 중단 여부와 관계없이 KEDO는 지금까지 추진돼온 사업의 관리 또는 북한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있는 경수로 이외의 사업추진 등을 위해 존속돼야 한다"는 한승주 주미대사의 언급은 그래서 적실성이 있다.

클린턴 정부 당시 국방장관을 지내고 공화.민주 양당의 요청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는 윌리엄 페리 장관은 최근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부재와 안이함을 비난했다.

미 정부가 정녕 경수로 사업 중단을 넘어서 KEDO 집행이사국에서 탈퇴한다면 한반도 정책에 있어 미국의 단견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