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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땐 걷고 ‘야동’ 대신 운동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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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가수 김흥국(57)씨는 13년차 ‘기러기 아빠(자식 유학을 위해 해외에 처자식을 보내고 뒷바라지하는 아빠)’로 유명하다. 김씨는 지난 8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내가 왜 아빠랑 못살고 외국에 살아’라고 말해 슬프고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김씨처럼 많은 기러기 아빠가 외로움과 싸우며 지낸다. 밥을 대충 때우거나 거르기 일쑤다. 혼자 남겨진 외로움에 술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다. 자칫 황폐해질 수 있는 기러기 아빠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쁜 사례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김종훈(55·가명)씨는 동료 사이에서 ‘성실한 기러기’로 통했다. 매일 새벽같이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고 곧장 집으로 가는 게 일과였다. 그는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동료는 물론 가족에게도 병세를 털어놓지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서였다. 외로움은 술로 달랬다. 그러던 어느날 김씨가 3일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동료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문을 열고 김씨의 집에 들어서자 김씨는 소파에서 쓰러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좋은 사례 차움 면역증강센터 조성훈 교수는 3년째 기러기 아빠다. 그는 아침마다 주스를 식사대용으로 마신다. 헬스장에서 30분 정도 러닝머신으로 걷기 운동을 하고 출근한다. 오전에 생수 1L를 마신다. 점심은 동료 의사와 한식을 먹되 대화하며 천천히 씹는다. 월·목·토요일 저녁엔 사우나를 즐기고 수요일은 친구들과 저녁모임을 갖는다. 다른 날엔 집에 곧장 들어가 인터넷·잡지에서 본 레시피대로 음식을 해먹는다. 밤 11시 전에 잠을 청하고 다음날 오전 6시에 일어난다. 3개월에 한 번은 면역세포 활성도 검사를 받아 면역력을 점검한다.

기러기 아빠는 40~50대가 주를 이룬다. 건강에 가장 신경써야 할 시기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40~50대 남성은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종 건강지표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라며 “혼자 지내면서 건강관리에 소홀했다간 신체·정신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에게 찾아오는 큰 고난은 혼자 ‘식탁 차리기’다. 단순히 식사 한 끼를 넘긴다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편식을 하거나 식사를 거르기 일쑤다. 조성훈 차움 면역증강센터 교수는 “식생활이 면역력에 큰 영향을 준다”며 “매 끼니는 힘들겠지만 ‘1주일에 적어도 몇 번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밥을 먹을 때는 되도록 천천히, 최소 30~50번을 씹는다. 조 교수는 “가족과 대화하며 천천히 먹는 게 가장 좋지만 밥을 혼자 먹는 기러기 아빠는 밥을 대충 씹고 넘기기 쉽다”며 “밥을 오래 씹어야 침속 아밀라아제가 분비돼 소화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아밀라아제가 분비되면 소화력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든다. 이는 NK(자연살해)세포나 T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혈관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을 잘 돌게 해 면역력을 높인다. 하지만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넘겨 소화운동이 떨어지면 혈액 순환이 저하된다. 노폐물도 잘 배출되지 않아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또 잠자기 전 밤늦게 식사하는 건 금물이다. 조 교수는 “야식은 인슐린 분비를 늘려 탄수화물·단백질을 모두 지방으로 바꿔준다”며 “비만을 유발하는 건 물론 기도가 좁아져 잘 때 무호흡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체 면역세포의 70%는 장에 분포한다. 장 건강을 지키는 식습관이 중요하다. 조 교수는 “과식은 장내에 부패한 물질을 많이 쌓이게 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며 “아침 식사 전에 물 500㏄를 마시면 과식을 막으면서 장 운동이 원활해진다”고 덧붙였다.


기러기 아빠의 또 다른 고난은 ‘외로움’이다. 많은 기러기 아빠가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린다. 가족 없는 빈 둥지에 살고 있다는 외로움이 심해지는 증상이다. 유 교수는 “한국의 전형적인 아버지는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는 걸 어색해 한다”며 “특히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심리적 압박감이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울하고 고독해도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외로움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반복되면 수면 장애가 올 수 있는데, 이는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게 한다. 스트레스지수가 높아져 코르티졸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조 교수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려면 기분 좋을 때 나오는 엔돌핀이 많아야 하는데 우울하고 외로우면 코르티졸이 분비돼 면역세포 움직임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이럴 땐 걷기 운동 같은 유산소 운동이 좋다. 하루 20~30분 이상 걸으면 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도 엔돌핀과 함께 면역세포 기능을 활성화한다. 단 심한 운동은 피한다. 조 교수는 “운동을 너무 힘들게 하면 오히려 코르티졸 분비량을 늘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운동 후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면 혈관을 이완시켜 면역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혈관을 수축시켜 면역세포 움직임을 막는 술·담배는 피하도록 한다. 유 교수는 “혼자라는 이유로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거나 집에서 외로울 때마다 술로 마음을 달래는 기러기 아빠가 많다”며 “이는 간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비만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기러기 아빠의 말못할 고충 중 하나가 ‘성욕’이다. 아내와 오랜시간 잠자리를 갖지 못해서다. 성욕을 잘 해소하는 게 관건이다. 운동에 집중하거나 같은 취미생활을 가진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등 성욕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조 교수는 “야동(야한 동영상)으로 해소하려고 하다보면 중독돼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성욕을 건강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소 지병이 있으면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에게 말해두는 게 필수다. 집안에서 홀로 있을 때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다. 연락을 바로 취해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연락처를 메모지에 적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는 것도 방법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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