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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금융기관, 국유화가 능사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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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30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의 책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는 내내 지금의 한국 상황이 떠올라 심기가 불편했다. 가이트너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일하며 경제의 빠른 회복을 이끌어냈지만 공화 민주 양당으로부터 공격받은 ‘공공의 적’이었다.


그가 왜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가. 그 이유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매우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방만한 경영 끝에 무너진 월가의 금융기관에 대해 그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극단적인 불황이 닥쳤음을 인정하고 금융기관의 경영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테스트를 통과한 금융기관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 대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금융기관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되 국유화는 최대한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반발이 있었다. 일단 보수파는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비난했다. 정부가 부실한 금융기관에 돈을 투입하는 것은 말이 안되며, 부실 금융기관이 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진보진영은 ‘국유화’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부실한 금융기관에 귀한 국민의 돈을 투입했으니, 방만한 경영진을 다 솎아내고 직원들에게 지급했던 보너스를 모두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 번째는 뱅크런을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점이다. 국유화에 따른 두 번째 문제는 비전문가가 금융기관을 경영한다는 것이다. 각 금융기관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며, 기업문화도 상이하다. 그런데 정부에서 임명한 경영자가 단신 부임해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이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고, 또 예전에 지급되었던 보너스를 회수당할 상황인데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이트너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은 대신 공적자금의 비용을 엄청나게 비싸게 매겼다. 우선주 형태로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매년 어마어마한 배당을 챙겼던 것이다. 이 결과 2013년까지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으로부터 무려 1660억 달러(200조원)의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런 놀라운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신뢰 회복에 있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은 빨리 ‘고비용’ 자금을 상환하려 노력했고, 또 충분한 자본이 마련됨에 따라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었던 것이다.


가이트너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인기 없는 해법임에 분명하다.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사실상 국유화된 기업의 경영이 10여 년째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이제 ‘인기 없는 해법’도 대안으로 상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홍춘욱키움증권 수석 연구위원blog.naver.com/hong8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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