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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결정보다 옳은 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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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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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이미 판이 다 짜여 있더군요.” 수도권의 사립대 경영학과 A교수는 2014년 정부가 주최한 영남권 신공항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신공항 건설은 일찌감치 결정된 상태였습니다. 반대 목소리는 받아들여질 분위기가 아니었죠.” 이후 A교수는 회의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들러리만 서다 말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둘로 쪼개진 영남권의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탈락 시 사퇴(서병수 부산시장)’ 같은 강경론이 확산되면서 어느 곳이 되든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후유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첫째, 신공항 건설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고 둘째, 신공항 건설이 타당한지 면밀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먼저 신공항 사업은 영남 주민만을 위한 게 아니다. 인천공항에 이은 제2의 국가공항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 어디에도 국민 의견을 수렴한 흔적이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 논리로 시작된 신공항 건설에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는 걸 알게 되면 큰 반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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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11년 정부가 예측한 공사비(660만㎡)는 가덕도 10조3000억원, 밀양 9조8000억원이지만 최종 완공 단계에선 공사비가 1.5배 이상 늘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무엇보다 일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건 재추진 명분이다. 이승창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년간 연구 끝에 정부가 백지화했던 사업이 불과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걸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두 번째는 경제성이다. 2011년 정부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은 가덕도(0.7)와 밀양(0.73) 모두 낙제점이었다.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는 “가덕도와 밀양은 경제성이 없어 신공항 입지로 부적합하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논리대로면 불과 5년 만에 없던 경제성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신공항 건설이라는 정치적 결론을 미리 내놓고 짜맞추듯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국민 의견수렴도, 경제적 타당성도 모두 놓쳤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김해공항의 30%를 차지하는 공군기지만 옮겨도 포화된 공항 수요를 수용할 수 있지만 정부는 관련 연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5년간 누적 적자액만 2987억원에 달하는 11개 지방공항의 현실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신공항 발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이라도 백지화됐던 신공항을 재추진하는 이유가 뭔지, 공항 건설의 경제성은 있는 건지 알고 싶다. 빨리 결정하는 것보다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게 더욱 중요하다.

윤 석 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