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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내 뼈는 못 깎겠다”는 대우조선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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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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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회사를 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했던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13~14일 파업 찬반 투표에 들어갔다.

노조는 “사측이 채권단에 제출한 구조조정안이 노조원의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확정된 5조3000억원대의 자구계획 중 특수선 사업부문 분할과 인력 2000명 감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임금은 깎고, 상여금은 없애고, 희망퇴직까지 받았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7일 울산 본사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 행위를 결의할 예정이다. 이날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해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합법적으로 쟁의할 수 있다. 노조는 지난달 10일 시작한 임단협에서 임금 9만6712원 인상(호봉 승급분 별도), 조합원 100명 이상 해외연수, 성과급 지급, 성과연봉제 폐지,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적자는 5조5051억원에 이른다(부채비율 7308%). 2000년 이후 투입한 공적자금은 7조원이 넘는다. 회사는 빚에 허덕이는데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이 7500만원 선이었다. 평균 근속 기간은 16.8년. 민간 업체인 삼성중공업의 평균 연봉(7100만원), 근속 기간(12.5년)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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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업계 1위 연봉(7826만원)의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가 9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일 때도 임금 인상, 해외연수 확대를 요구했다. 다른 제조업종과 비교하면 조선 3사 근로자들이 받는 혜택이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3사 노조는 한목소리로 “경영 실패로 인한 부실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말라”며 지난 7일부터 상경 투쟁에 나섰다.

기업 구조조정은 고통을 분담하는 과정이다. 회사를 부실로 몰아간 경영진, 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채권단, 부실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회계법인이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경기가 호황일 땐 임금 상승, 복지 확대의 과실을 맘껏 누리다 불황 땐 정부에 손을 내밀며 임금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노조도 회사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11년 미국 자동차 업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회사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노조가 도와야 한다”며 강경 노선을 접었다.

지금은 노조가 파업 카드를 쥐고 채권단을 상대로 ‘밀고 당기기’ 전략을 쓸 때가 아니다. 채권단에 “회사 정상화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고 약속한 노조가 “다만 내가 다쳐선 안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하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그럴 거라면 ‘뼈를 깎는’이란 수식어를 함부로 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김 기 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