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높은 내용에 법조계 큰 충격|대한변협 「대법원장사퇴 건의」…어떻게 될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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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발송된 대한변협의 유태흥대법원장 사퇴권고건의문은 법조계는 물론 사회각층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보수적인 법조인 생리로 대법원장의 임기만료를 불과6개월 남겨놓고 재야에서 「불신임결의」를 한데 대해 특히 법원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건의문을 둘러싼 법조계의 반응은 판·검사, 변호사별로 조금씩 틀리긴 했지만 『이번 사태를 사법부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하고 제도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됐다.
○…대한변협의 건의문은 그 작성과정에서 크게 진통을 겪었다. 변협의 간부들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보낸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저해하는 사태가 재발치 않도록 당국에 건의해달라』는 의견서를 놓고 4일 변협상임이사회에서 건의문을 내는데는 의견이 일치됐으나 「사퇴권고」부분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4일의 상임이사회에는 12명중 김은호회장을 비롯, 부회장 박원서, 총무이사 이재인, 재무 정연조, 법제 김정규, 인권 유택형, 교육 나항윤, 공보 이석선, 섭외 강대헌변호사등 9명이 참석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회의에서 『인사권은 대법원장 고유의 권한인데다 사법부의 수장에 대해 물러가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하다』며 서울변호사회의 의견서 정도로만 건의문을 낼것을 주장했다는 것.
결국 이 문제는 대한변협 전체임시이사회에 넘겨졌고 2시간30분간의 격렬한 토론끝에 결국표결에 부쳐져 12대8로 사퇴권고 부분을 포함시키기로 했는데, 재적 42명중 25명 (13명은 위임장을 제출) 이 참석했으나 김은호회장 박원서부회장등 회장단5명과 위임장을 제출한 13명은 중립을 지키기위해 표결에 참가시키지 않고 20명이 표결했다.
변협측은 이사회 의결로 건의문등을 마무리짓던 전례와 달리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유현석·이해진·서철모변호사등이 소위원회를 구성, 건의문을 작성한뒤 김두현 한국법학원장,이병용·홍승만·김윤근변호사등 역대회장단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 넘겨 최종확정하는 신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변협측은 건의문 채택과정에서 사법부측에 『이사회를 비공개로 할테니 지난번 법관인사에 대해 법원의 간부가 나와 입장·배경등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대법원이 불응했다는것.
변협측의 요청을 받은 대법원에서는 인사에 관한 설명은 하지 않으면서 행정처차장 (지법원장급), 기획조정실장 (고등부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고등부장) 등이 차례로 변협을 찾아가 『건의문을 낼 필요가 있겠느냐』 『지난번인사는 정당했다』 『건의문을 낸다고 유대법원장이 물러나면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등 엉뚱한 무마작업을 하다 오히려 변협측을 자극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변협의 폭탄적인 건의문내용이 알려진 11일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큰 충격을 받은듯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나 법원의 보수적인 속성때문인지 표면으로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법원행정처의 한 간부는 『격려로 받아들일수 있겠지만 내용이 너무 강해 사법부전체의 위신을 실추시키지 않을까 그게 걱정된다』며 『어쨌든 사법부가 물의를 빚어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견해를 표명.
행정처의 다른 간부는 『변호사단체가 엄청난 압력단체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고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정도 했으면 이제는 여론도 사법부의 체력회복을 위해 힘을 주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한 측근은 9월초에 있었던 일련의 인사는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재량권 한도내에서 이루어진 정당한것이었으며 아무런 하자가 없는 인사였음을 강조.
그는 Y부장판사는 정치적 사건처리로 물의를 빚은바가 전혀 없던 사람으로 품위문제와 관련해 전보됐던 것이고, 인천의 P판사는 법률해석의 잘못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해명.
P판사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원정가 시위를 벌인 대학생14명의 즉심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진 3명에게는 구류선고를 하고, 가담한 11명은 무죄를 선고했는데 전원이 시위사실을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면제라면 모르되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률적인 잘못이라는 설명.
이 측근은 또 『투고로 문제된 서태영판사는 기강확립을 위해 징계할 대상이었으나 인사로 대신한 것이고 이는 인사권자의 권한범위내의 일』이라고 강조.
○…변협의 「대법원장 사퇴권고」소식이 알려지자 일반법관들은 일손을 제대로 잡지못하고 착잡한 표정들이었다.
한 판사는 『변협이 법조라는 같은 울타리에 있으면서 너무 사법부를 코너에 모는것 같아 섭섭하다』며 『그래도 꿋꿋이 사법적 보루의 역할을 해나가려 애쓰는 많은 판사들이 있다는 점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씁쓸한 표정.
또 다른 판사는 『제2의 사법파동이라는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며 사법부발전의 계기가 될수있지 않겠느냐』며 『변호사회도 할말은 해야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한변협의 건의문이 보도되자 검찰은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 같다』며 비상한 관심.
검사들은 사법부의 공신력이 실추되는경우 그에 대응하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에 대한 신뢰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법원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는 한편 긍정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대한변협이 대법원장 사퇴권고라는 톤 높은 내용을 담아 건의문을 발송한데대해 재야변호사들은 『그동안 사법부를 향해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고 풀이.
83년초 대법원장 비서관 독직사건과 주변 인물들의 불미스런 루머등으로 한차례 시련을 맞았으나 이번과는 달리 조용히 수습됐던것은 대법원장 개인책임으로 돌릴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번 인사파동의 경우는 『지난 봄 고법 부장판사 승진인사후 대법원장 측근이 아니면 승진하기 어렵다는 뒷말이 있었던데다 또다시 인사파동이 일자 화살이 대법원장에게로 돌려진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김일·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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