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력없는 「불신임안」|변협의 대법헌장사퇴권고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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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한변협이 유태흥대법원장의 사퇴를 권고하는 건의문을 발송한데대해 당사자인 법원은 물론 검찰조차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달 26일의 법관인사이후 일부 법관들사이에 다소 불평의 소리가있었으나 표면화된것은 서태영판사가 9월2일자 법률신문에 인사불만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직후였다.
대법원은 1일자로 서울민사지법으로 발령된 서판사를 2일자로 부산지법 울산지원으로 재전보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소장판사들의 일부 움직임이 있었으나 중견법관들의 설득으로 무마됐던것.
그러나 4일자로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승서)가 대한변협에 『앞으로 이런일이 없도록 변협이 건의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문을 내 재야법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번에 대한변협이 낸 건의문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건의문에다 「사퇴권고」 부분만 추가한 것이다.
대한변협은 그동안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을때마다 성명서·건의문등의 형식으로 입장을 밝혀왔다.
건의문을 낸 근거는 대한변협의 회칙 2조 (목적) ①항의 「기본적 인권옹호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문항이라고 변협관계자는 설명했다.
대법원측도 서울변호사회가 변협에 건의한 이후 박우동법원행정처차장·안우만기획조정실장·가재환대법원장비서실장등이 변협을 찾아가 대법원의 입장과 이번인사의 배경등을 설명하고 건의문을 내지말도록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태흥대법원장이 김은호대한변협회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는 후문.
유대법원장은 변협에 대해 직·간접적으로『절대로 이번문제로 물러나지 않을것』이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변협의 한 간부는 이 건의문이 비록 법적 강제력은 없어 유대법원장이 묵살할 가능성도 있지만 재야법조계 전체의견으로 불신임안을 낸 것이므로 최소한 앞으로는 신중한 인사권행사를 하도록하는 경고적·선언적의미가 크다고 풀이했다.
그는 또 이번 건의문이 법조삼륜(법원·검찰·변호사) 중 변호사들이 현재의 사법권독립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한데도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방이후 대한변협이 대법원장의 사퇴권고건의문을 낸 것은 모두 세차례로 김병노대법원장이 처음이었고 71년 사법파동때의 민복기대법원장이 두번째였으나 모두 묵살됐었다.
「권위의 상징」이자 「정의의 상징」으로 추앙받아야 할 대법원장의 사퇴권고 건의는 재야법조계가 취할수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란 점에서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있는 유대법원장은 83년초 비서관독직사건이후 또한차례 가장 힘든 시련을 맞고 있어 건의문의 처리결과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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