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만난 사람] “AI 자산운용 시스템 10월이면 마무리…어부가 나보다 고수익 낚을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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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반인 고수들의 투자 패턴 분석
AI 집단지성 시스템으로 활용
현재는 불법…제도 개선 기대
공모펀드 예전같지 않지만
펀드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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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천 회장은 7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인터넷이 정보의 유통을 촉진했다면 모바일 세상은 누구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끼의 유통’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자산운용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강 회장은 7일 경기도 판교 에셋플러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모바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일반인도 자금을 운용하게 하고, 운용능력이 좋은 사람은 기관투자자 등 고객과 연결해 실제 투자자금을 맡기는 신개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야 투자고수 등 일반인이 운용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 투자에 필요한 재무·시세 정보 등 각종 데이터가 포함된 시스템 개발작업은 올 10월 마무리할 예정이다.

‘가치투자 1세대’ 강방천 새 도전

강 회장이 설명한 ‘신개념 디지털 자산운용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투자실력은 뛰어나지만 현재 펀드매니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한 강 회장은 사회생활 초기 한 증권사의 전산실에서 근무했다. 강 회장은 “내가 지금은 가치투자가로 유명하지만 만약 계속 전산실 업무만 했다면 내 끼를 발휘할 수 있었겠느냐”며 “가령 지금 시골에서 어부를 하고 있는 사람도 나보다 더 뛰어난 운용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바일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전엔 스펙만 보고 펀드매니저를 뽑았다”며 “하지만 이제 끼가 있으면 어부라도 누구나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2014년 이 시스템 네트워크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특허결정도 받아냈다.

강 회장은 우선 한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 수만 개 종목 가운데 유망한 종목을 선별해 ‘모(母)집단’을 만들 계획이다. “상식적으로 우량한 기업, 이익이 나고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을 1000~2000개로 추리는 작업”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후 투자실력을 발휘하고 싶은 일반인 투자자에게 1000만~2000만원 가량을 주고 이들 종목을 운용하게 한다.

단타 매매, 몰빵 투자 등을 방지하기 위해 10개 종목, 3개 업종 이상에 투자해야 하고 한 종목에 투자자금의 40% 이상을 넣는 것은 금지하는 등 가이드라인도 둔다. 이렇게 6개월~1년을 투자하고 나면 운용자의 투자 스타일과 운용능력이 검증될 것이란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강 회장은 “일반인인 만큼 수익률 그 자체보다 근본적인 운용능력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자 스타일 데이터는 네트워크에 저장되고, 인공지능(AI)을 통해 투자 성향도 분석한다. 또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솎아내고 새로운 인력을 받아들인다. 이런 검증 과정을 거치면 기관투자자들을 비롯한 일반 고객들에게 이들 운용인력을 연결시켜 준다.

투자 스타일과 성과에 대한 데이터가 저장돼 있기 때문에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투자성향의 운용인력을 선택할 수 있다.

강 회장은 “좋은 운용인력을 계속 걸러내기 때문에 수익률은 계속 좋아질 수 밖에 없다”며 “어떤 펀드매니저도 이런 개방형 플랫폼을 이기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 시스템을 한국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 수출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강 회장은 일단 시스템 개발 작업이 올 가을 끝나면 1~2년 동안 에셋플러스 내부에서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일반인 참여도 중요한 대목이지만 시스템 자체에도 새로운 기능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엔화가 강세로 가면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큰 기업’을 검색하면 바로 리스트가 나온다든가, 가상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AI가 ‘당신이 구성한 포트폴리오의 PER는 시장 평균보다 얼마가 높습니다’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1~2년 내부 운영이 끝나면 다시 1~2년 동안 일반인 참여 시스템 운용을 한다. 일반인이 고객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일은 약 5년 후에나 가능한 셈이다. 물론 일반인에게 고객자금을 운용하게 하는 건 자본시장법 등 현행 법령에 위배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돈을 굴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당연히 금융당국과 시행 여부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면서도 낙관적이었다. 그는 “특허를 처음 출원했던 6~7년 전만 해도 법 규정이 엄격했는데 핀테크의 도래로 법 규정도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의 이런 구상엔 최근 공모펀드가 쇠퇴하고 있는 현재 시장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강 회장은 “일각에서 이제 펀드라는 게 없어지는 것 아닌가, 펀드의 효용가치가 다 한 것 아닌가 하는 얘기들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과거엔 기업의 성장 과정 속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어 기업가치와 주가 사이에서 운용 주체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며 “하지만 이젠 정보 접근비용이 제로가 됐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보 비대칭성이 높은 사모펀드로 돈이 몰려가는 것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듯하다”고 말했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내는 기업이 있고, 투자위험을 줄여줄 요구가 있는 한 펀드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라며 펀드 무용론을 일축했다.

강 회장은 이밖에 장기투자에 대한 인식 제고도 주문했다. 그는 “장기 투자는 좋은 종목, 좋은 펀드를 골랐다는 전제 하에서 해야한다”며 “지난해 시장 최고점에 들어가 놓고 올해 폭락했다고 볼멘 소리를 해선 안 된다”고 국내 투자문화를 비판했다. 이어 “은행 등 판매 주체도 펀드의 철학이나 운용사에 대한 설명 없이 수수료 올리기에 몰두하고, 운용사도 인기영합적인 상품 위주로 쏟아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 회장은 “지난 시절 한국의 기축 자산은 부동산이었다. 이제 펀드로 넘어와야 하는데 과거 주식과 펀드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다들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은 위대하다. 다만 투자문화를 바꿔야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강방천 회장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 등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외환위기 때 1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150억여원으로 불렸다. 1999년 에셋플러스투자자문을 창업했고, 2008년 에셋플러스자산운용으로 전환했다. 2013년 스웨덴 자산운용사가 선정한 ‘세계 최고 투자자 99명’에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소개됐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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