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지의 쓰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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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 성인들은 산과 물을 좋아했다. 특히 공자는「인자악산」으로 산을 좋아했고, 노자는 「상선약수」라 하여 물을 좋아했다.
산은 영구청정 불변 부동의 것으로 알았다. 동산에 올라 노국이 좁은 것을 알고, 태산에 올라선 천하도 오히려 작은 것을 느꼈다. 세상살이의 이해·영욕에 회똑거리지 않고 천지간 호연한 기운에 젖으려면 산에 오름이 으뜸이라 여겼다.
물이 좋은 까닭도 말했다. 물은 만물에 싱싱한 생기를 주고, 높은 데를 바라지 않는, 낮은 곳으로만 흘러도 끝내는 강을 이루고 바다와 같은 큰 존재가 되는 까닭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도 산과 물을 좋아한다. 그 도는 지나쳐서 거의 광적이다. 지난 여름만 해도 어쨌는가. 이름난 산, 이름난 물가라면 밀어닥친 인파가 전례 없는 통계라고 했다. 인파들은 「인자악산」하여 호연지기를 가꾸자는 것이었는가. 「상선약수」래서 물의 교훈에 젖어보자는 것이었는가.
마음은 딴 데 있었던 것 같다. 길이 나있으니 쉽게 갈 수 있고, 남이 가는 피서 나라고 못갈 것 없고, 풀어헤치고 한바탕 놀고 먹기도 편할 것 같다는 마음이 앞섰던 건 아닐까.
생각 있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들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라·지리·설악의 봉우리들이며, 무슨 담·무슨 계곡, 또 해변·해수욕장 할 것 없이 온통 쓰레기 공해로 큰일이 났다는 이야기들이다.
이제 우리의 산과 물이 이렇듯 쓰레기공해로 병들어간다면, 어디에 가 영구 청정 불변 부동의 산을 찾으리며, 어디에가 만물에 싱싱한 생기를 주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뿐인가. 도시주변에는 이른바 쓰레기 매립장이 없어 골치라는 소식이다. 이른 아침 골목길을 나서보아도 사실 집집에서 내어놓는 쓰레기들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양이요, 갖가지 다양하기도하다.
와락 겁이 날 때가 많다. 이러다간 온통 악취 들끓는 쓰레기세상이 되고 말 것 같다. 공자나 노자가 오늘의 산수, 세상살이를 본다면 무슨말을 할까.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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