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방 따로없는「철벽안보」과시|85을지훈련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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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시 비상사태에 대비한「85 을지연습」이 1주일만에 끝났다.
「을지연습」은 적의 전면적인 기습공격 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가상 시나리오에 대입, 전 국민이 위기를 이기는 훈련이었다.
북괴의 남침 전략은 한마디로 기습공격에 의한 속전속결이다.
따라서 북괴가 또다시 한반도에서 불장난을 벌인다면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이 전 국토는 동시에 전쟁터로 변하게 된다.
특히 북괴는 단기 결전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부지역을 우선 강점한 뒤 정치적 협상을 벌인다는 이른바「정·전 배합전략」까지 세워놓고 있어 최전선에서의 전투 못지 않게 후방의 전세도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금년「을지연습」의 특징은 어느 때 보다 실전과 다름없는 강도 높은 상황이 각계각층에 부여됐고 유사시 후방국민들이 반드시 겪게될 단전·단수사태, 통행금지, 등화관제, 일시주거 이동 등 긴박하고 현존하는 사항들이었다.
내무부 민방위 관계자들은『이번 훈련에서 국민들이 많은 불편을 참으면서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 협조해 예상 밖의 성과를 거뒀다』고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있다.
그러나 20일 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6개 도시에서 실시된 야간등화관제 훈련에서 공습경보가 내려졌는데도 일부지역에서는 완전 소등이 이뤄지지 않았고 20·21일 양일 간 전국 50개 시 지역에서 있은 야간통행금지 훈련에서는 ▲보행인 5만6천9백90명과 ▲차량 2만7천8백69대가 적발됐다.
또 자가용·관용승용차 격일 제 운행훈련에서는 23일까지 자가용 3만5천3백50대, 관용차량 1천2백86대 등 3만6천6백36대가 마음대로 운행,「경고」를 받은 것은 아직도 우리주변에 『나 하나만은 괜찮겠지』하는 비 시민적 의식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 것.
더우기 1천여 대의 관용차량이 위반행렬에 버젓이 끼어 거리를 질주했다는 것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도시지역의 야간 통행금지·등화관제·승용차 격일 제 운행훈련과는 달리 농·어촌과 도심 변두리 지역에서 주로 실시된 응급복구훈련, 단전단수사태 극복훈련 등이 일사불란하게 치러진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지만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45㎞밖에 떨어져있지 않고 우리의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의 중심지로 1천만이상의 인구가 밀집돼있다. 따라서 수도 서울이 적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수도권의 방어는 곧바로 국토방위의 성패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야간등화관제·통행금지 훈련은 유사시 군 작전을 돕기 위한 것이며「극난극복」의 훈련 이기도 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 건물 1채가 파괴될 때 평균 3명이 사망했으나 방호 대피훈련 등을 받은 경우 0·3명밖에 희생되지 않았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그만큼 도시에서의 전시대비훈련은 인명과 연결되는 것이다.
1차 대전 당시 군인과 후방의 민간인 사망자 비율은20대1(1천만명 대 50만명)이었지만 2차 대전 때는 1대1, 6·25동란 때는 1대5였고 월남전에서는 1대20의 비율로 현대전에서의 후방민간인 희생자는 늘고 있다.
바캉스를 떠나면서 집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표시하기 위해 아파트의 실내등을 모조리 켜놓고 가버려 등화관제훈련에 차질을 빚게되자 민방위 대원들이 아파트 전체의 전원을 꺼버렸다면 무관심하게 바캉스를 떠난 1가구 때문에 전쟁이 나기도 전에 이미 주위사람들은 피해를 본 셈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어려움을 조금씩 나눠 갖는 것이 바로「을지연습」의 참뜻이기도하다.
공교롭게도 북한이「을지연습」기간 중 적십자 회담에 적극성(?)을 보인 것도 주목된다.
그들이 비무장지대 부근에 병력을 전진배치 시키고 1백70여 개의 지하갱도를 파고 미제 헬기 87대를 밀반입, 대남 침투훈련을 하고있음이 확인 된 것도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북괴도 평화를 바라고 있구나』『공산당도 죽일 놈은 아니다』는 등의 위험한 생각을 일부나마 심기 위한 그들의 흉계가 적십자 회담에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를 이번 훈련을 끝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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