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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복기 또 복기, 승부사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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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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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이세돌 사범을 만났다.

홍진기 창조인상 사회발전부문 수상이 계기였다.

수상 소감을 듣는 인터뷰이건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둑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알파고와 대국 이후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알파고와 다시 대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대결을 요구할 만한 자격을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그랬다. 꽤 시간이 흘렀건만 그는 그 시간만큼의 복기를 여태도 하고 있었다.

‘자격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 말엔 그의 현실 인식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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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의 대국 시 복기 모습이 떠올랐다.

대답을 들려주지 않은 상대, 그래도 답을 구하고 또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승부가 결정 난 세 번째 대국 후 그가 말했다.

“인류가 진 게 아니고 이세돌이 진 것입니다.”

그날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 알파고에 진 이세돌’이 된 게다.

그런데 그가 재대국을 하고 싶다고 했다.

“분명 허점이 있을 겁니다. 두 판을 이기는 걸 목표로 다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분명 도전인데 두 판을 이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렇다면 또다시 ‘알파고에 진 이세돌’이 될 터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하고 싶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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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었다. 당시 취재기자가 그에게 복기에 대해 물었다.

“바둑 끝나면 이기든 지든 복기를 하잖아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나요?

진 것도 화나는데 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졌는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죠. 어떻게 이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졌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답노트 정리와 비슷한 개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느낌이죠. 바둑이 스포츠가 됐지만, 저는 바둑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다음에

좋은 것을 만들 듯, 바둑기사는 더 훌륭한 예술 작품을 위해 복기를 하는 겁니다.”

그가 2승을 목표로 재대결을 하고 싶다고 한 이유를 3년 전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졌는지 알고 싶은 게다.

나아가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최근 그의 행보가 또다시 화제다.

‘프로기사회 탈퇴’가 그것이다.

2009년 ‘바둑리그 불참 선언’ 후 재대결인 셈이다.

7년이 흘렀다.

그만큼의 복기가 있었을 것이다.

나름의 현실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여론은 이세돌의 편이 아니었다.

하나 지금의 여론은 대개 이세돌의 편이다.

이 시점에 띄운 그의 승부수, 통할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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