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험 업무를 외주업체로 돌려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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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생일 전날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의 후폭풍이 거세다.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간 구조적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서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기업과 퇴직 사우들 간의 유착이다. 서울메트로는 기술 분야에서만 30가지 이상의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는데 상당수 외주업체를 퇴직사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업체는 서울메트로로부터 연 9%가 넘는 고수익과 최대 22년의 독점사업권을 보장받았다고 하니 누가 봐도 정상적인 계약이 아니다. 공기업이 ‘퇴직 후 직장’을 만들어 이권이 보장된 일감을 몰아주면서도 서울메트로 출신이 아닌 대부분의 현장 직원들은 복지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혹사당했던 사실이 이번 비극을 통해 드러났다. 퇴직 임직원들의 배를 불리느라 정작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직원들의 안전은 나 몰라라 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메트로는 퇴직 직원들을 챙겨주려고 허술한 안전 관리를 눈감아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판술 서울시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숨진 김군을 고용한 외주회사는 작업확인서 195건 중 48건에서 작업자가 한 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인1조 근무지침을 최소한 4번에 한 번꼴로 안전기준을 공공연하게 무시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고는 예고된 참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찰과 검찰은 이들의 유착 의혹을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 이권이 걸린 부문은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면 스스로 깨끗해지지 않는 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년 동안 유사 사고가 반복됐음에도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피해자 가족과 시민 앞에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더불어 안전 업무의 외주 관행을 뜯어고치는 근본적인 대책도 내놔야 할 것이다.

지난 19대 국회 시절이던 2014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발의했던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 직접 고용법’이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 법안은 철도·도시철도·항공·운수사업 등 생명·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외주 용역을 금지하고 정규직을 직접 고용해서 보다 나은 근로조건·안전환경 아래에서 일을 맡기게 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상관없이 안전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안전 차별 금지’ 내용까지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 법안이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2015년 3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불과 한 차례만 논의된 뒤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는 것이다. 곧 개원할 20대 국회는 개원 즉시 힘없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폐기된 관련 법안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하기를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비정규직과 외주업체 직원들이 붕괴·화재 등으로 희생되는 비극적인 산업재해가 너무 흔해졌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는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위험한 업무들이 외주업체에 무책임하게 떠맡겨져 안전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