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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필드에서 만난 사람] 리우 올림픽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 최경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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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 최경주. 오종택 기자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와 감독들 중 날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선수들이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돼 줘야죠.”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최경주(46)는 든든했다. “17년 연속 PGA 투어에 출전하는 게 쉽겠어요? 제가 큰 무대에서 겪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모두 전수해 줄 겁니다. 두 선수 중에 금ㆍ은ㆍ동 하나는 나오겠죠. 확신을 갖고 갑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이후 112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재진입한 골프는 남ㆍ녀 개인전만 열린다. 한국은 여자 4명, 남자 2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남자는 세계랭킹이 높은 안병훈(25ㆍ세계랭킹 27위)과 김경태(30ㆍ37위)의 출전이 유력하다. SK텔레콤 오픈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던 최 감독을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최경주재단에서 만났다.

선수들에게 뭘 전수해 줄 수 있을까.
“처음 맞는 올림픽이라 모두 긴장할 것이다. 긴장했을 때 볼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훅이 나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 두 번만 돌면 답이 딱 나온다.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거기 맞는 훈련법을 공유할 것이다. 이건 올림픽이 끝나도 선수로서 평생 써먹을 수 있다.”
심리전에 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룰을 갖고 시비를 거는 선수들이 있을 거다. 순진하게 대응하면 안 된다.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아예 딱 잘라버려야 한다.”
갖고 있는 걸 다 퍼주는 거 아닌가.
“그래야 다시 채워진다.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는 선배를 본 적이 없다. 코스 안팎에서 선수는 외롭다.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에 대해 조언해 주는 선배가 꼭 필요하다.”
가장 자신 있는 건 역시나 벙커샷이겠다.
“물론이다. 코스를 공략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벙커다. 선수들은 대부분 벙커를 피해 공을 날린다. 벙커를 가로질러 치면 버디 찬스가 나오는데 말이다.”
이번 올림픽이 침체된 남자골프가 부활하는 계기가 돼야 할 텐데.
“한국 남자골프가 위기에 빠진 건 스폰서ㆍ팬ㆍ미디어와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팬들에게 감사하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프로암(공식경기 전날 아마추어와 프로가 함께 라운드 하는 것)에서 동반자를 꼭 껴안아준다던데.
“동반자가 멋진 샷을 날리거나 버디를 하면 ‘이리 오소. 내가 해 주는 거 있소’하며 안아준다. 아버지 같은 분들이 아이처럼 좋아한다. 나중에는 ‘이 정도면 잘 쳤으니 나도 안아 줘’하고 들이대신다.”
프로암 도중에 원포인트 레슨도 해 준다던데.
“10년 전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그쪽 손님에게 그립 잡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얼마 전 미국 대회에서 그 분이 ‘그립, 그립’ 하면서 달려와 나한테 안겼다. 내 덕에 90대 치다가 싱글이 됐다면서. 하하”
후배들에게도 프로암 때 잘 하라고 늘 말한다던데.
“프로암에서 코스 파악한다면서 제 공만 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러면 손님들이 뭐라고 하겠나. 코스 파악은 화요일에 끝내고, 수요일은 무조건 손님들과 같은 티(티샷 자리)에서 치라고 말한다. 꼭 뒤에서 쳐야 할 것 같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라고 강조한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최경주는 열일곱 살에 처음 골프연습장을 보고 “뭔 닭장이 저리 크다냐” 했다고 한다. 온갖 고초와 풍파를 이기고 한국 최고의 골프 선수가 됐고,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 도전해 17시즌 동안 8차례 우승했다. 그는 늘 도전했고, 겸손했고, 나눌 줄 알았다. 그는 “돈은 하나님이 잠시 맡긴 것이니 잘 쓰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중단됐던 KJ Choi 인비테이셔널(최경주 초청 골프대회)이 올해 재개된다던데.
“보훈처의 도움으로 88컨트리클럽(경기도 용인)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스폰서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대회 명칭은 KJ를 빼고 후원사 이름을 넣으려고 한다.”
한국 나이로 50을 바라보는데, 어떤 변화가 있나.
“작년 하반기부터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꾸준히 몸 관리를 해서 50대의 반란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사회 50대들은 한참 일해야 할 나이고, 돈도 많이 드는데 명퇴ㆍ반퇴 같은 살벌한 소리에 시달린다.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주말 골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말해준다면.
“즐기라는 것이다. 어차피 연습을 많이 못하는데 프로처럼 칠 수는 없다. 다만 준비는 잘 해야 한다. 2~3일 전부터 가볍게 스윙 연습을 하고, 클럽도 잘 닦아두고, 애들 소풍 기다리듯 해야 한다.”

최경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2001년 Q스쿨 당락을 결정짓는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마치 분필로 그은 것처럼 퍼트 라인이 선명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 실린 얘기다.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천국에도 골프장이 있을까요."
“(단호하게) 없습니다.”
“없으면 좋겠습니까.”
“거기까지 가서 골프 치라고요? 거기 가서는 푹 쉬어야죠.”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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