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속 「람보」에 매료된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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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번 미국 영화 『람보2』 선풍을 보면서 텔레비전 출현 후 상당 기간 대중과 멀어졌던 영화 미디어에도 군중이 놀랍게 모여드는 양상에 대해 그 의미를 생각해 봄직하다. 바로 요즈음 우리 현실 안에선 옳고 그르다는 게 무엇이며, 나라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놓고 힘과 소리가 분산되고 권위와 여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마침 이 영화 관람객이 운집하여 혼잡까지 보인 일은 우리 사회의 내면을 반영해 주는 뜻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고 문제가 많다고 지적돼 오던 중에도 70년대 후반엔 수입된 『취권』이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줄거리조차 온전치 못한 그 무술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어디에 있을까 의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화를 뒤돌아 보면 텔리비전에만 갇혀 살던 관객이 가끔씩 해방감을 맛보며 즐길 수 있는 게 고작 영화의 존재 가치였을 것이다.
섹스물이나,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청년 문화, 상류 문화의 복제품(TV도 마찬가지였지만),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은 몇백년전의 궁중 비화, 이런 생활적이 못되고 오늘의 감각에 동떨어진 CF같은 국산 영화의 문제를 『람보2』의 선풍이 되짚어 보게 한다. 60, 70, 80년대를 통해 큰 변화는 없었고 영화는 물론 그 외 미디어가 전하는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제 삼복 염천에 새벽부터 직접 극장을 찾아 장사진을 이루는 「한편의 영화」에서 우린 70년대 『취권』 이래 또다시 어떤 사회적 의미를 찾아 읽어야 하는가.
금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실상 어느 해치고 무덥지 않은 해도 별로 없었지만 올해는 신문·방송이 전해 주는 여름의 더위는 가히 숨막히는 것이었다. 일기예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기사나 보도의 성격 내용이 가히 이글거리는 염천보다 한결 답답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헌법을 놓고, 학원은 안정법을 놓고, 일터는 노동법을 놓고, 교육과 예술은 「민중」을 놓고 진땀나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 중간에 끼여 소시민으로 자기 본분을 지키고, 자기 일터에서 전심전력하며 더위를 이겨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일터에서 공연히 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람보2』에 몰린 엄청난 인파는 일터에서 마음이 겉돌아 당장 후련하고, 시원하고 ,통쾌한 것을 찾던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든 거라고 의미를 붙여 봄직도 하다.
어쩌면 극장 앞에서 전날 밤 돗자리를 펴고 밤샘하는 등의 고역까지도 이 무더위 현실을 잊어버리는 수단이 되었을지 모른다. 『람보2』는 섹스 대신 살상이 난무한다.
폭력은 어차피 순간적인 사건이며 관중에게 쾌락을 선사하겠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바르게 쓰여지는 「힘」에 대한 대중의 동경은 일시적인 게 아니고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게 마련이다. 『람보2』의 내용, 즉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의 배경과 사건이 애국·권력 내지는 그 당시 정체의 비리 및 술수와 연결되어 있는 소재를 담고 있어서 일반 관객이 그냥 즐길 수 있는 일반적 한계를 뛰어넘어 구성됨으로써 단순한 허구의 세계와 다른 메시지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지켜보고 열광하는 관객들은 왜 딴 나라 얘기에 그토록 공감하고 후련해 하는 것일까.
나라 걱정을 앞세우면서 영웅 심리에나 사로잡혀 자기 주장만 옳다고들 떠들썩해진 현실을 사는 관객들은 불사신의 초인적 능력을 지닌 「람보」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한 맺혀도 풀길 없는 갈등을 경험한 관객들은 「람보」의 종횡 무진한 복수 능력에 모든 걸 떠맡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무언지 자기 삶에 대한 불만에 싸였다면 「람보」를 보는 냉방된 관람석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문제에 해답을 갈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람보」가 보여준 대로 현실의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놓고 『타잔』에서 『셴』까지 영화 속의 영웅들을 모두 합쳐 놓았다는 슈퍼스타를 맞아 이 산적한 난제를 속시원하게 풀어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람보」가 외치던 『조국은 중요하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 만큼 나라도 우리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외마디를 귀에 담고 영화관을 나섰을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이 사회의 운행을 지켜보면서 모두가 안전 벨트를 착용하는 지혜를 생각해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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