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야모또」와 대규모수영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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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침 종전40주년을 맞은 요즘 일본에선 전함 대화(야마또)가 동지나해 3백40m의 바다밑에서 발견되었다하여 떠들썩하다.
대화는 2차대전때 일본이 국력을 기울여 건조한 세계최대의 신예전함으로서 7만2천t의 초노급에 46cm주포 9문을 비롯한 가공할 화력은 천하무적을 자랑할만했다.
대화만 있으면 바다에서의 걱정은없다고들 믿었다.
처음 만들때부터 논란은 많았다.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것이었다.
해군일부에선 앞으로는 항공시대가 열리니 막대한 예산이 드는 전함보다 차라리 항공모함이나 비행기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어느시대건 소수의 의견이 경청되기는 어려운 법.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한 동해해전의 승리에 꽉 젖어있던 일본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에선 결국 전함의 화력에의한 함대결전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고 주장, 반대를 무릅쓰고 대화건조를 강행했던 것이다. 대화는 기름도 많이들어 구축함30척에 맞먹었다.
사람이란 경험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옛말에 좋았던것은 계속 좋을 것으로 믿기 쉬운가보다. 일본은 대화뿐아니라 같은 규모로 무장도 만들었다.
당시 일본의 경제력에서 그같은 초노급전함의 건조는 큰 무리여서 민생문제는 물론 다른 군비에도 깊은주름을 안겨주었다.
그토록 기대를 모은 전함들이었지만 막상 2차대전땐 46cm짜리 주포한번 제대로 쏴보지도 못하고 패퇴했다. 시대에 늦은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항공모함과 비행기가 해전의 주역이되어 함대결전이 일어날수가 없었다.
2백∼3백 마일을 상거해 서로 비행기로만 공방전이 벌어졌지 전함끼리는 만나지도 못했다.
동해해전때와 같이 주력함대끼리 넒은 바다에서 대진, 치열한 포격전이벌어졌을때 대화의 거포로서 적을 압도하려했던 계획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일본해군에선 뒤늦게 전함을 항모로 개조하는등 부사을 떨었으나 사후약방문격이었다.
대화등을 만든 거함거포주의자들은 순수한애국의 시념으로 그렇게믿고 밀어붙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자원의 낭비로 비애국적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런일은 항상 일어날수 있다.
대화도 전쟁 말기엔 기름이 없어 매어놓았다가 오끼나와 결전때 겨우 편도분의 연료률 싣고 최후의 특공작전에출전, 미함재기 1천여대의 집중공격을 받고 2시간만에 장렬히 침몰했다. 주포의 위력이 아무리 가공스럽다해도 그것은 전함끼리의 싸움에 함력적인 것이지, 벌떼같이 달려드는 비행기엔 속수무책이었다.
동해해전에서 2차대전까진 얼마안되는 세월이었지만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던 것이다.
달라진 시대에 옛 머리가 주도하니 대화의 비극이 생긴것이다.
그때 침몰한 대화가 오랜수색 끝에 이번 발견된 것이다.
네 동강으로 찢긴 대화의 참혹한 잔해를 보고 아직 살아있는 설계자의한사람은 말문을 열지못했다 한다.
대화를 건조할땐 최신 조병기술의 총화로서 벌집모양으로 특수설계되어 부심함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그토록 무참히 부서질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화의 비극은 기존관념에 얽매여 시대의 흐름을 간취못하고 소신을 고집하다 비참한 결과를 본 역사의 교훈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2차대전때의 프랑스「마지노」선도마찬가지다. 1차대전때의 참호전에 꽉젖은 프랑스육군은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여 독일과의 국경을 따라 지하요새를 건설, 난공불락이라고 안심 푹 놓았는데 전격전개념을 도입한 나치 기갑부대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시대적 변화를 이해·수용하는 유연한 사고와 탄력적대응에 실패했던 것이다.
지금은 대화가 없는가. 옛날에 좋았으며 지금도 좋고 그길만이 옳으니 다소 반대가 있더라도 소신껏 밀어붙이자는 거함거포주의자들은 어느시대에나 있게마련이다.
하루아침에 중화학입국을 한다고 동양최대규모라는 공장들을 무수히 짓고, 커야 위력이 있다고 해외건설이건 종합상사건 해운회사건 전국체전이건 좌우간 키우고 보다가 얼마나 많은 잔해들이 널려있는가.
옛날 어려울때의 포원으로 큰잔치별이고 분수이상으로 자랑하다 덤핑관세 맞은것, 인플레에하도데어 물가안정만 하면 만사형통할것으로 밀어붙였다가 경제를 이토록 어렵게만든것이 모두 비슷한 발상이다.
경기가 그야말로 숨넘어가니 뒤늦게 돈풀고 추경짜는것이나 일본해군이 뒤늦게 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것이나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널려있는 대화의 잔해도 많은데 지금도 계속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체전만 한번 치르고나면 지방중소도시엔 빚더미와 대규모수영장등 최신식 체육시설만 몰골없이 남는다한다.
지금 전국체전을 앞두고 춘천에선 준비가 한창이라 하는데 또 다른 대화를 만들고 있지나 않는지 걱정된다.
특히 국가적 행사인 올림픽은 잘못하면 엄청난 대화를 남길 우려가있다.
요즘 문 꽁꽁닫힌 대학은 기름 떨어져 매어있는 대화를 연상케한다.
만성적 학원불안을 없애기 위해 학원안정법을 만든다 하는데 과연 대화의 주포와는 달리 위력을 발휘할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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