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전한 시민생활을 위한 캠페인|낮에는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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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원기상사-. 서울 상도4동 간선도로변 2층 양옥집에 들어선 단종건설업체사무실.
차고를 개조한 4∼5평크기의 사무실에서 여상을 갓 졸업한 단발머리 차림의 경리사원이 연방 울려대는 전화 받기에 여념이 없다. 『나 전무인데 주문한 공구 도착했어.』
30대의 깡마른 젊은이가 걸려온 전화를 넘겨받는 순간 봉고차 1대가 사무실앞에서 짐을 부린다.
봉고차 뒤편에는 공사 장비인 각종 공구가 쌓여있고 틈틈이 유명회사의 VTR·TV·벽시계등 전자제품이 숨겨져 있다.
지난달 25일 하오6시. 한떼의 형사들이 이회사를 덮쳐 사장·전무·상무등 3명의 중역(?)손에 쇠고랑을 채울 때까지 이웃집에서도 이들이 차치기 조직 강도단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양옥집 지하실에는 전자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값비싼 양주로 가득찬 홈바까지 갖춰져있다.「5월수입금 1억원」-. 압수한 경리장부를 들여다본 수사 경찰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가정집 털어봤자 몇푼되나요. 한달 2∼3차례 전자대리점을 터는게 낫죠.』
낮에는 토건회사 사장, 밤에는 떼강도 두목인 김원기씨(30). 중졸로 직장을 구할수도 없고 땀흘려 일해봤자 목돈 벌기 글렀다고 판단한 그는 기업형 떼강도로 2년사이 3억원을 치부했다. 경기도 성남시단대동 단칸셋방. 20대에 별 (전과)2개를 단 조모씨 (31) 는 별 3개의 동생 (24)과 이마를 맞대고 앉았다. 『우리 형제가 힘을 합해 한탕 합시다.』
남매를 둔 형과 미혼인 아우는 순식간에 의기투합, 장사를 시작했다.
동생은 금품을 배앗은 뒤 부녀자에게 장가(폭행)를 들어야 신고를 못한다고 믿어 지난달 2일에는 서울상도2동 장모씨집에서 현금1만원, 25만원짜리 산호반지를 빼앗고는 50대의 장씨를 폭행했다. 『우리 형제의 직업은 강도죠.』 조씨는 경찰조사과정에서 거리낌없이 직업을 강도라고 소개했다. 3개월간 21차례의 강도행각을 벌였으니 틀림없는 말이었다.
서울 노량진동 현대건업주식회사-.
사원은 남자가 10명, 여자가 4명. 버젓한 토목회사지만 공사일을 맡는 법은 없다. 사장 양모씨(31)의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강도로 별이 6개인 것이 특징.
미모의 여사원 지양(21)이 화장품 외판원을 가장, 집안답사를 나간뒤 2시간만에 1보가 들어왔다. 『동빙고동 3거리부근 왼쪽 돌담집. 60세가량된 여자혼자 있고 뒷담쪽이 허술하며 보물 많음.』
양사장은 즉시 사원 3명에게 박치기 (행동에 옮기는것)을 명령했고 이날의 순수익금은 2백여만원. 훔친 물건은 5천여만원어치지만 현금이 없고 3천만원짜리 파텍스 필립손목시계를 60만원에 넘겨 현금2백여만원만 순수익으로 잡았다. 양사장은 다음날 비둘기(연락책)지양에게 20만원, 기계3명에게 30만원씩 곧바로 일당을 나눠줬다. 양사장은 1년만에 l억원을 벌어자가용을 굴렸지만 훔친수표에 주민등록번호를 적은 것이 화근이돼 일망타진됐다. 『요즘 강도들은 생계비마련 목적이 아니라 유흥비나 축재수단으로 목돈을 노리고 있어요.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사하기 위한 범죄라서 분업화된 기업형 강도가 많고 잡힌뒤에도 크게 후회하는 기색이 없는게 특징이지요.』
정년퇴직을 l년앞둔 노수사관 강찬기경정(서울용산서 수사과장)은 젊은이들이 한탕주의, 쾌락위주의 찰나주의에 빠진 것은 어른들이 배금사상에 찌든 가치관으로 온사회가 병들어있는 탓이라고 한탄했다. <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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