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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트럼프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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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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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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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현실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 관측은 허튼소리로 취급받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민주)과 트럼프(공화)의 지지율은 혼전 양상이다.

트럼프 돌풍은 기존 관점을 깬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의 예측은 실패했다. 오랫동안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를 깎아내렸다. 그의 막말과 돌출, 괴짜(freak)와 기행(奇行), 자질 논쟁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런 보도와 논조의 영향력은 떨어졌다. 그 이유는 미국 사회의 밑바닥 민심과 달라서다. 트럼프는 반격한다. “투표는 미디어가 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가 한다.” 트럼프는 전통과 관습을 허문다. 그는 아웃사이더의 전략모델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정당·언론·여론조사·정치 실세들을 활용하는 선거의 중개 수단을 회피한다. 그는 직접 유권자들을 상대해 자신을 팔러 다닌다.” (데이비드 본 드렐, 타임지)

트럼프 타워(Trump Tower)는 성취를 과시한다. 뉴욕 맨해튼 5번가 명품 거리의 58층 빌딩. 그 속에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사업본부가 있다. 대선 캠프도 있다. 지난주에 빌딩 1층 트럼프 카페에 가봤다. 트럼프 와인도 판다. 종업원은 이런 설명을 했다. “트럼프 와이너리는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의 생가 몬티셀로 와이너리 근처에 있다. 트럼프 와인은 제퍼슨 와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와인 한 잔에 11~18달러다. 트럼프는 브랜드로 승부한다. 그 속에 기업인의 도전과 성공신화가 담겼다. 와인에서 대선까지 그는 브랜드를 중시한다.

빌딩 밖 차도가 차단된다. 옆쪽 56 E 스트리트. 행인들이 눈치를 챘다. 트럼프의 외출이다. 200여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지켜본다. 경호원들이 대형 SUV(시보레 서버반) 2대를 둘러싸고 있다. 트럼프가 차에 오르며 손을 흔든다. 행인들이 소리치며 호응한다. 카페 종업원이 주장한다.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후보가 된 이달 초부터 당선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트럼프가 뉴요커라는 사실이 새삼 돋보인다.” 그는 “20일 트럼프는 애국적인 모임에 참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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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회는 미국총기협회(NRA) 모임(켄터키주 루이빌)이다. NRA 총회는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시민의 총기 소유를 인정한 수정헌법 2조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NRA 회원수는 500만. 총기 소유권은 미국의 건국 정신이다. 총은 민주수호의 궐기 수단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21세기 미국의 총은 테러와 죽음을 낳는다. 총기 규제 조치는 실패했다. 그것은 NRA 로비 때문만이 아니다. 수정헌법이 있는 한 총기 논쟁은 이어진다.

트럼프는 자극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노출시켰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 세우기, 테러를 막기 위해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지방신문 기자였던 빌 레스터는 내 친구다. 그의 진단은 이렇다. “오바마 정부는 불법 이민과 소수인종 문제에 유연했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중·하층 백인들은 분노한다. 오바마의 진보적 어젠다는 전통적 청교도 가치를 약화시켰다. 그에 대해 남부와 중서부 백인들은 좌절한다.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은 이 미묘한 이슈를 두리뭉실 넘긴다. 이제 트럼프가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한다. 다수 백인들은 그의 해법에 쾌감을 느낀다. 독설과 막말도 있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그들 생각이다. 그것이 트럼프 열풍의 바탕이다.”

트럼프 언어는 간략하다. 그는 “간결함은 지혜의 본질이고, 기억하기 쉽게 해주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Apprentice)의 진행자였다. 그의 말은 명쾌하다. ‘해고한다(You’re fired).’ 트럼프(70세)는 뉴욕군사학교와 명문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12권의 책을 냈다. 트럼프 타워 1층 진열장에 책들이 전시돼 있다. ‘불구가 된 미국’-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Crippled America-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 부제는 그의 선거 슬로건이다.

트럼프는 노련하다. 그는 쟁점을 질러버린다. 막말도 계산돼 있다. 그다음 반전을 준비한다. 말 바꾸기와 변신이다. 그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미치광이’라고 했다. 그다음엔 “김정은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요즘엔 히스패닉계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트럼프 반대시위는 계속된다. 그는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했다. 최근엔 “동맹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협상의 승부사다. 세상을 거래한다. 그것은 한국엔 기회가 된다.

권력은 흙탕물 속에서 쟁취한다. 힐러리와 트럼프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 호감 비율은 비슷하다. 미국 대선은 최선, 차선의 선택이 아니다. 차악(次惡)의 인물 뽑기가 됐다. 트럼프는 미국을 흔든다. 안보와 경제에서 한·미 관계는 결정적이다. 트럼프를 알아야 한다. 그 돌풍을 추적해야 한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