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임기 말의 진흙탕 투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기사 이미지

박보균
대기자

대통령 주문은 ‘특단(特段)’이었다. 장관들 응답은 평범했다. 지난주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는 윤성규 환경부 장관.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대통령께서 특단의 대책을 조속히 수립, 시행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대책은 산만했다.

특단은 권력의 언어다. 권력은 그 말로 긴장과 충성심을 주입한다. 하지만 관료들은 시큰둥했다. 대통령의 말은 소홀히 다뤄졌다. 특단의 권위도 추락했다. 그것은 임기 말에 익숙한 장면이다. 박근혜 권력은 침체기에 들어섰다.

특명의 실패는 예고됐다. 미세먼지 줄이기는 난제다. 부처 간 조율은 민감하다. 국민 설득도 긴요하다. 중국과의 환경외교 방안도 중요하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진은 안달했다. 대통령 말의 강도와 절실함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정말 심각하다. 이 좋은 날씨에 마음대로 산책도 못한다”고 했다.

급조는 졸속이다. 경유는 지난해까지 클린 에너지였다. 하지만 먼지의 주범으로 몰렸다. 정부의 해명은 미흡했다. 경유 값 인상 논란에 여론 반발은 컸다. 고등어가 주범 대열에 끼였다. 정책 변덕과 황당함은 민심 분노를 낳는다. 국정 신뢰는 떨어졌다. 최대 피해자는 박 대통령이다.

누군가 나서야 했다. 서두르면 섣부르다. 하지만 정부는 시간에 쫓겼다. 발표 시한은 박 대통령의 귀국 전이다. 정책은 숙성 기간을 갖는다. 그런 사정을 대통령에게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섬과 정리는 부족했다. 신임 비서실장 이원종은 행정의 달인이다. 그는 급조의 문제점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원종도 나서지 않았다.

기사 이미지

8일 조선·해운의 구조조정 계획이 나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내놓았다. 그는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났다. 부총리 주재 관계장관 회의가 생긴다. 컨트롤타워의 실종 비판에 대한 응수다. 하지만 지각 등장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지금부터다. 실천 과정은 곡절과 진통의 연속일 것이다. 정부 계획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했다. 야당은 비판, 반발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난제다. 선택과 집중은 힘들다. 정책 결정의 사후 책임 공방은 고약하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논란은 심각하다. 지난해 KDB산업은행은 그 부실덩어리에 4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하지만 그 시절 산업은행장 홍기택은 반박한다(8일 경향신문). “대우조선 지원안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당시 부총리), 안종범(당시 경제수석), 임종룡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최경환은 권력 실세다. 친박의 간판이다. 홍기택은 박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이다. 그의 행장 취임은 대통령의 신뢰 덕분이다. 이제는 폭로성 돌출의 주역이다. 권력의 신임은 역설을 생산한다. 권력의 치부와 질투는 노출된다. 홍 전 행장의 주장은 충격이다. 휘발성이 넘친다. 산은 자회사의 인사 나눠먹기 주장은 청문회 감이다.

‘불쌍한 금융위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극적 언어다. “각 주무부처가 밑그림을 짜고 부총리가 조정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엉뚱하게 불쌍한 금융위원장(임종룡)이 뒤집어썼다”(3일 한국은행 강연·간담회)고 했다. 이제 부총리 유일호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임 위원장의 신세가 바뀔지는 미지수다.

권력의 작동 습관이 있다. 5년 단임제의 관성은 독특하다. 사람 쓰기의 유연함을 요구한다. 선발과 구원투수가 나눠져야 한다. 지금은 묵직한 돌직구형이 필요하다. 임기 말 관료 성향은 눈치 보기와 느슨함이다. 권력 주변도 마찬가지다. 정책 추진의 활기를 재충전할 시점이다. 그것으로 구조조정을 독려해야 한다. 충성과 사명감의 관리가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한 악역(惡役)의 존재가 절실하다. 욕을 먹으며 진흙탕에서 돌직구를 던져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 사람들’의 자격 요건이다. 권력의 성취는 진흙탕에서 만들어진다.

이원종 실장은 관료 9단이다. 그의 공직 경력은 40년. 산전수전의 경륜이다. 그는 10년 전 충북도지사 3선을 포기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퇴장’으로 남았다. 그것은 그의 신조다. “물러갈 때가 더 중요하다. 박수 칠 때 떠나라.” 그는 구원투수로 재등단했다. 올드 보이의 귀환이다. 하지만 퇴장 후 귀환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명예로운 기억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역의 모험과 용기를 막는다. 공직의 행운은 반복되지 않는다. 이원종은 진흙탕의 투지 스타일도 아니다.

여소야대는 엄혹하다. 청와대는 그 상황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노태우 정권 때 3당 합당은 여소야대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근혜 정권은 정국 주도권을 내줬다. 그 장악력의 재탈환은 사람과 전략으로 이뤄진다. ‘대통령 사람들’의 참모 역량과 각오가 달라져야 한다. 진흙탕 속 악역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정운영의 재역전 조건이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