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원, 한승원, 전상국의 최근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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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창작에서나 출판에서나 저조하다는 인상을 씻기 어려운터에 중견작가 세사람이 거의 동시에 상재한 세 장편소실을 만날수 있게되어 매우 반가왔다.
홍성원의 현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마지막 우상』 (현대문학사간), 한승원의 불교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삼성출판사간), 연작형식으로 발표되었던 전상국의 『길』 (정읍사간) 등이 그것이다.
40대 후반의 이 세작가들은 70년대에 6·25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그 방면의 중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거니와 우리가 이 소설들에서 주목하고 있는것은 그들이 소년기에 체험한 한국전쟁이 이 소설들에서 직접적으로든 배경으로든 여전히 강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의 문학적 의식은 그것을 벗어나 좀더 보편적인 주제로 세계관을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들의 관심이 같은 쪽으로, 비슷한 방법으로 진전되고 있는것은 아니다. 홍성원은 가막도라는 외딴섬에 우연히 유폐된한 지식인이 의외의 사건들에 개입하게 됨으로써 관찰하게된 이 폐쇄적인 섬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해부함으로써 비극은 비극 자체에 있는 것이아니라 그것을 은폐하고 외면토록하는 허위의 장치에 있다는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승원은 최인훈의 초기의 기독교소설 『라울전』을 연상시키는 수법으로 두 비구니의 대조적인 구도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는 바울적구원관을 불교에서 재현해내면서 다른한편 샤머니즘의 뿌리에서 우리의 근원적 뿌리를 찾아내던 그의 다른 장편 『불의 딸』과 같은 관점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양할 대안으로 전통불교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식민지시대 말기로부터 4·19에 이르기까지를 그 시기시기마다의 문제성과 더불어 성장하는 주인공의 역정을 그린 전상국의 『길』은 시대가 인간을 키우는 우리의 역사적 삶의 한종면을 관통하면서 우리의 현대사도 그것의 무게에 짓눌려온 우리자신의 초상을 그려보인다.
이 소설들이 갖고있는 약점, 가령 『마지막 우상』에서 그 후반이 콜레라 전염병과의 싸움이란 전반부의 흐름과 맥을 약간 달리하는 사건으로 선회하여 그 어색함을 씻지 못한다는 점, 『길』 에서 역시 후반의 아버지의 출현부터 일관성이 깨지고 초점이 흐려지며 역사 해석이 상식적이라는 흠을 갖고 있다는점, 그리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가자 가자 더 높이 가자」 라는 뜻이다) 는 구도의 목표 또는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성욕에 관련된 것으로 수렴시키는 인상을 준다는점등을 지적하는데 굳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들이 새삼귀하게 보이는것은 이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있는 단단한, 원숙할 정도의 단단한 골격을 갖추면서 서정적인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은 오늘의 황량한 시대에 미덕으로 보인다)을 지니고 있다는점과 함께 그들이 추구하는 주제들이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삶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가치론적 근거를 만들어주고 있기때문이다.
홍성원의 진실을 향한 인간적인 싸움, 한승원의 초월적 가치를 향한 구도에의 집념, 전상국의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확인은 시대가 바뀌고 관점이 달라져도 결코 버려서는 안될 작가의 진지한 기능의 일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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