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공부하는 학생들의 것"| 신임 서울대총장 박봉식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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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려운 시기에 총장직을 맡게된 소감은.
▲갑자기 중책을 맡아 감회를 느낄 시간조차 없다. 주위에서 만류도 있었지만 누구든 맡아야 할 자리라는 생각에서 수락했다. 어려운 상황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문화원농성학생 처벌문제를 다시 재론할 생각인가.
▲아직 학내문제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받지 못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라면 처벌은 교육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차원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학생활동이 정치의 주요 이슈로 되는 현실 상황이다. 이 점은 조속히 지양돼야 한다.
-정부에서 학생징계문제에 불만을 품고 총장을 교체했다고들 해석하는데-..
▲나는 모르는 사실이다. TV뉴스를 보니 이총장은 여론의 동정을 받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 같으니 잘 도와달라(웃음).
-총장 내정은 언제 알았나.
▲문교부장관비서실에서 20일 상오10시30분쯤 학교연구실로 통보해줬다. 손제석 문교장관과는 하오에 불광동데니스코트에서 따로 만났다.
-사전 언질은 없었는가.
▲없었다. 손문교와는 서울대정치과 선후배사이로 외교과에서 함께 교수로 있었고 평소부터 절친한 사이다.
손문교와는 어려움을 얘기해왔었다 (박총장이 손장관의 1년 선배. 58년부터 나란히 서울대서 교편을 잡았고 73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함께 정부와 인연을 맺기도 한 사이다.)
-학생들의 시위를 어떻게 보는가.
▲유인물의 내용이나 행동방식이 때로 학생의 본분을 넘어선 때가 있다. 토론이나 연구에 그친다면 모르지만 이를 학원 밖에서 행동으로 드러내면 곤란하다.
-학생들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개인자격으로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학교를 문제가 될만한 단체행동이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 삼아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어떤 일부터 시작하겠는가.
▲많은 교수들과 폭넓은 대화를 가져 공감대를 형성할 계획이다. 이론상 대학의 주체는 학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수가 주체다. 학생은 세월따라 바뀌지만 교수는 불변이다.
-학원자율화 1년반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은.
▲대학은 본질적으로 자율적인 곳이다. 새삼 자율화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과거 어려운 역사를 반영하고있다.
학생들은 자율화의 한계와 참뜻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포부는.
▲학생과 교수가 연구와 강의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힘쓰겠다.
유네스코사무총장을 4년간 맡으면서 느낀 점은 세계적으로 교육 과학 문화방면의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험에 비춰 일부학생들에 의해 대학전체가 마비돼 국제경쟁에서 패배자가 되는 것을 그냥 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대학은 도서관에 자리가 없으면 식당에 앉아서까지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것이다.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즈음 운동권 학생이건 공부하는 학생이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앞으로 달려가고만 있는 것 같다.
방학기간을 이용, 등산이나 여행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볼 여유를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임 박봉식 총장은 서울대교단에 27년간 몸담아온 국제정치학교수. 이용희박사(전 통일원장관)를 도와 외교학과를 신설한 창설멤버의 1인이다.
80년에는 입법회의의원으로 제5공화국에 참여, 이규호 대통령비서실장이 문교부장관일 때 유네스코 한국위사무총장을 맡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사고방식이 규격화됐다는 평을 듣는다. 이 때문인지 별명은 「독일병정」. 교내 보직을 한번도 맡은 적이 없는데다 교수들과의 관계도 생소한 편. 학내사정에 어둡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염려 속에 당장 전임 이총장이 넘겨준 미문화원 농성학생 처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주목거리.
부인 지정수여사 (49)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있으며 취미는 테니스.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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