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편집장 레터] 비밀의 숲길 ‘사려니오름’이 열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사려니오름 기슭 깊은 숲의 풍경. 나무를 덮은 건 콩짜개덩굴이다.

 제주도에  ‘사려니숲길’이라는 예쁜 이름의 길이 있지요. 하늘을 덮을 만큼 키 큰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온갖 종류의 난대림이 숲을 이루는 깊은 숲길이지요. 숲에 들어서면 눈앞의 세상이 온통 초록색이지요. 비 내린 이튿날 걸을라치면 초록색이 번져 어지러울 정도지요. 대여섯 해 전부터 소문이 나면서 이미 명소가 되었지요.

이 길의 이름이 왜 사려니숲길인지 아시는지요. 현재 사려니숲길은 비자림로(111번 지방 도로) 입구에서 물찻오름과 붉은오름을 거쳐 남조로(1118번 지방 도로)까지 이어지는 약 10㎞ 길이의 숲길을 이릅니다. 그러나 길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사려니의 ‘사’ 자도 만날 수 없지요.

이유는 ‘아직 가지 않은 길’에 있습니다. 비자림로에서 약 7㎞를 걸으면 ‘월든 삼거리’가 나오지요.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남조로 출구로 나갈 수 있고요. 월든 삼거리의 나머지 한 길, 그러니까 삼거리 정면으로 난 길을 끝까지 걸어야 사려니오름이 나옵니다. 사려니숲길은 이름처럼 사려니오름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월든 삼거리에서 사려니오름까지 9㎞ 구간은 평소에 막혀 있습니다. 이 일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서입니다. 하여 많은 사람이 사려니 숲길은 알아도 사려니오름은 모르는 것이지요.

그 비밀스러운 숲길이 1년에 딱 한 번 열립니다. 올해는 6월 4일부터 18일까지 보름간 열립니다. 저도 딱 한 번 이 길을 걸었습니다. 일부러 아니 억지로라도 짬을 내서 걸어 볼 만한 길이었습니다. 왜 평소에는 이 길을 막는지, 아니 막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장담컨대 우리나라 최고의 숲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편집장 손민호 ploves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