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복수·딜레마 상황이야말로 인간 존재 잘 보여주는 효과적 장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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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8 면

14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 앞은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칸 영화제의 선택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박찬욱(53) 감독의 신작 ‘아가씨’ 공식 상영의 열기는 뜨거웠다. 외신들의 평가대로 ‘아가씨’에는 일본과 한국을 배경으로 두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었다.?


전작 ‘스토커’(2013)에서 보여준 특유의 미장센과 고딕 스타일 세트의 활용, ‘박쥐’(2009)의 이질적이고 불균질한 미학, ‘올드보이’(2003)의 힘있는 서사,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연대와 친밀감, ‘복수는 나의 것’(2002)의 숨막히는 침묵과 긴장의 에너지까지. ‘아가씨’에는 서구와 일제와 조선이 혼재해 있던 1930년대 식민지 치하처럼, 지금껏 시네아스트로서 그가 선보여온 것들이 다 용해되어 있었다. 매 순간 숨막히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이미지들,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의 연주로 녹음한 밀도 높은 음악, 적재적소에 배치된 모차르트와 라모의 선율,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까지, 박찬욱은 그가 할 수 있는 최고들만 골라 담은 영화를 들고 칸을 찾았고 관객들은 뜨겁게 화답했다. 국적·성별·계급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아시아에 닥쳐온 근대성을 두고 이토록 다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니-. 영국 가디언은 별 넷을 주며 박찬욱의 시네아스트적 역량에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


프리미어 시사 이후 쉴 틈 없이 일정이 이어지는 박 감독을 며칠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틈날 때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칸에 온 소감은. “기술이 진보하니 영화를 다 찍고나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칸에 출품할 버전을 보내놓고도 계속 손을 봐서, 출국날까지 밤을 샜다. 여기 와서 기분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개봉판 편집을 끝내놓고 왔으니 비로소 다 끝났다는, 안도하는 마음이 든다.”


벌써 세 번째다. 칸 영화제에 자주 오는 감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어렸을 때에는 정말 고리타분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죽을 때까지 그렇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풀렸을까?’라는 의아함과 어리둥절한 기분을 못 벗어날 것 같다. 내가 원한 건 평화롭고 조용한 인생이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여러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니까 영화과도 가고 싶었는데 못 갔다. 이런 일이 나하고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협업도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가항력적으로 끌려오듯 영화를 하게 된 거고 성격도 좀 변해서 이제는 협력하는 일이 괜찮아졌고 즐거움도 느끼게 됐다. 경력이 점점 쌓이면서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두게 되니까, 그들과의 협업은 언제나 나의 경계를 확장시켜주는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제는 마냥 즐기기에는 그저 힘들다.”


스타일이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재에 따라 맞춰간다. 『핑거스미스』(영화의 원작소설)를 하기로 했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형식이나 태도를 고민한다. 다만 왜 그런 걸 택했느냐? 소설을 읽고나면 누구든지 영화화하고 싶지 않았을까. 반전이 충격적이고, 인물들이 아주 생생하다. 소설 내용을 다 영화에 가져올 순 없지만 그 시대의 풍속이나 시대상의 재현도 눈에 보는 것 같이 그려냈으니 말이다.”


특별히 인상깊은 대목이 있었나. “소설 초반부에 하녀가 아가씨의 이를 갈아주는 대목을 읽다가 ‘이런 장면은 영화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를 갈 때 나는 아주 미세한 까끌거리는 소리, 바짝 가까이 있으니 몸에서 나는 냄새나 향기·숨소리, 그 장소의 공기들을 영상으로 담는다면 문자로 읽을 때보다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날까, 막 상상이 되더라. 그 장면 때문에 ‘아가씨’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영 후 관객들 반응이 다양했다.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중간에 나가는 관객도 약간 있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 ‘올드보이’랑 비슷하다. 아트 영화가 아니라 상업적이다. 좀 더 섬세해지고 여성성이 강화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할리우드에서의 경험이 이 작품에 미친 영향이라면. “촬영 횟수에 대한 것이다. ‘박쥐’는 거의 100회 가까이 찍었다. 송강호랑 촬영감독이랑 회의하고 현장에서 편집도 하면서 ‘이게 더 좋지 않을까?’ 해서 또 다르게 찍고. 하루 12시간 이상 찍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하루 12시간씩 총 40회 밖에 할 수 없었다. ‘아가씨’는 70회 예정했는데 68회로 끝냈다. 한국 역시 표준근로계약을 지켜야 하고, 제작비를 초과하지 않아야 하니까. 미국에서 받은 영향이라면 그런 거다. ‘스토커’를 한국에서 찍었더라면 배우들이랑 더 오래 이야기하고 회차도 더 길어졌겠지만,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술 창작의 묘한 지점이기도 하다. 환경이 좋다고 작품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금기와 딜레마를 꾸준히 다루는 이유는. “영화가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보았을 때, 딜레마 상황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종족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기 좋은 효과적인 장치다. 완전히 벽에 막힌 것 같고 좁은 곳에 갇힌 것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면서, 그 존재가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관찰을 하는 거다. 그럴 때 효과가 좋다. 내가 극단적인 상황, 복수, 금기, 딜레마 같은 상황을 늘 설정하는 이유는, 그때 나타나는 행동의 양식이야말로 인간을 잘 규정할 수 있는 답을 주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의 베드신은 서로 평등한 두 존재가 만나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온기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성애가 한국 사회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일종의 금기라고 본다면, 금기와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영화도 소중하고 필요하다. 그것과는 또 다르게, 그런 건 아예 무시하고, 이 영화의 드라마 안에서 ‘내가 속여야 하는 사람인데 사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이 사람이 좋으니까 이런 행동을 한다는 식의 접근이 나는 통쾌하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속여야 하는 상황이 흥미롭다. “이 영화는 두 여주인공이 감정에 충실한 걸 따라간다. 사회적인 시선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감정이다. 각자 자기 임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배반해가면서 어떻게 감정을 키워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감정이 생기면 생길수록, 커지면 커질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망가뜨려야 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커진다. 나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두 여주인공이 그냥 서로 자기 마음을 확 밝히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저 털어놓느냐’가 진짜 게임이다. 탁 터지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백을 하는 것이고,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의 희열을 보고 싶었다.”

책 읽는 공간이 기이하다. 남성 관객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 판타지적 공간으로 보인다.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는 식민지 시대의 풍경인데, 아주 과장해서 만들었다. 조선 땅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인데, 내부는 영국의 거대한 건축 양식이다. 서재는 다다미방에 족자를 모셔놓는 공간이고 낭독을 진행하는 무대가 있다. 스타일이 완전히 섞여있는 곳인데, 그렇다고 뒤죽박죽 보여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굉장히 완결되고 조화로워야 하는 공간이다.”


조진웅씨의 표정 연기도 인상적이다. “다다미방은 신을 신으면 안 되는 공간이다. 연미복을 빼입은 코우즈키도 구두를 벗고 다다미를 건너간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부자들의 호사 취미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 공간이 독회 때가 되면 변신한다. 다다미 몇 개를 들어내고 물, 기암 괴석, 분재까지, ‘일본식 미학의 정수’라 불리는 일본식 정원을 실내로 끌어들여 온전히 자기 우주를 만든 거다. 대사까지 썼다가 뺐는데, 코우즈키는 그런 공간에 대한 탐닉과 자부심이 있다. 그에게 자신이 통치하는 왕국을 내려다보는 듯한 왕의 표정을 부탁했다. 조진웅씨의 마지막 촬영이었고 정들었던 세트를 떠나는 날이다 보니, 왕국을 떠나는 왕의 심정처럼 감정적으로 고양됐다고 하더라.”


다다미방 한쪽에 무대 세팅을 위한 기계 장치들이 보였다. 동양적 공간에 기계가 등장하는 게 난데없다는 느낌을 준다. “무대에서 김민희씨가 낭독을 할 때 창이 열리고 인형이 내려오고 쇠창살이 나오는 등 근대적인 기계장치가 결합된 공연이다. 여자가 책을 읽는 행위의 핵심은 매우 음란하고 추잡한 이야기를 그냥, 들려줄 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말을 하는 여자를 보고, 책 읽어주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각각 상상에 빠진다. 코우즈키는 한 술 더 떠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상상은 제각각이다, 나는 그 상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살아왔다’며 상상을 상상하는 걸 즐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낱낱이 파헤치려고 하는, 아주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시선이다.”


여주인공의 역할이 도발적이다. “포인트는 히데코가 성적인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상상을 하는 것이다. 청중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다. 그의 낭독 연기는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대배우처럼 당당한데,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시선을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기도 성적인 상상을 한다. 책 속에 묘사된 여자들의 정사 장면을 읽으면서는 본인과 숙희를 상상하며 책 읽어주는 걸 들으러 온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완전히 몰입된다. 심지어 갑자기 정전되어 글자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다. 텍스트를 다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재는 남성의 시선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인데 여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건가. “서재는 완벽하게 압축된 세계다. 거기에 또 다른 주인공인 숙희만 없을 뿐이지, 히데코의 처지와 서재에서의 역할, 그 역할의 변화가 다 표현되고 마무리 짓는 건 숙희다. 그렇게 비싼 세트를 지으면 폭파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해야 돈 들인 보람이 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여러 외신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예로 들며 ‘아가씨’가 시점을 변화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지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라쇼몽’과 달리 ‘아가씨’는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상승한다. “라쇼몽은 시점을 나눈다면 늘 언급되는 레퍼런스 영화다. 내가 ‘아가씨’가 수상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영화는 ‘라쇼몽’처럼 진지하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고, 그냥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가? 주인공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고,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고 자기가 처한 조건을 극복해 나가는가? 그런 투쟁을 담아낸 과정이고, 백작과 코우즈키에게는 잔인한 댓가가 따르는 권선징악, 해피엔딩의 지극히 상업적이고 단순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제 폭력은 조금 접어뒀다 치고, 성(Sex)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성은 인생사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중 하나다.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것이 영화 만드는 사람의 의무라면, 성의 문제는 피해가기가 힘들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궁금한 게 아닐까?”


‘아가씨’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그 감정이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감정이라면, 아름다운 것이다.”


본인은 어떤지. “저야 나약한 소시민이라…(웃음).” ●


칸(프랑스) 글 김나희 문화평론가 nahui.adelaide.kim@gmail.com,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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